내가 논산 군번으로 1284ㅇㅇㅇㅇ 이니 군번으로 내 나이나 입대년수는 대략 알아볼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군 시절 제가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이 '엽전들은 맞아야 돼.' 입니다. 만약 요즈음도 이 말이 군내에서 사용된다면 군의 현실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의식주가 현대화된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근무 상황을 일컫는 것임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군 복무 시절에도 '구타금지' 니 '소원수리' 라는 단어는 상관들의 훈시로나 벽에 붙어있는 수많은 표어들로 인해 수시로 접하는 말이지만, 군생활 중에 현실화된 바는 없습니다. 하루 여섯 번 정도의 구타나 얼차려가 있어야 잠을 잘 수 있는 것이 현실이었으니까요. 왜 여섯 번이냐구요. 6시 기상하고 연병장 한 번 돌고 내무반에 들어오면 식사 전까지 1차, 아침 먹고 들어오면 2차, 점심 먹고 들어오면 3차, 저녁 먹고 들어오면 4차, 그리고 5차는 점호시간에, 마지막 6차는 잠자다가 깨워져서 화장실로 불려가는 겁니다. 그런 나날의 연속 중에 선임자들의 지시 외에 딴 생각이 내 몸을 지배할 시간이 없었으니, 되돌아보면 참 숨가쁜 나날이었습니다. 저 못된 선임자 중에는 나 자신도 포함되는 겁니다. 제 후임들에게 저는 무서운 선임이었으니까요. 그러한 군 생활 중에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위에서 이야기한 '엽전들은 맞아야 해.' 입니다. 제가 저 말을 처음 듣고 느낀 것은 '엽전'이 뭐지? 라는 궁금함이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단어가 우리나라 사람들을 뜻한다는 사실을 알고 기가 막혔지만, 부지불식 간에 저는 저보고 맞아야 한다고 수시로 일러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군생활 이후에 듣기 싫은 말들이 두 가지 있었으니, 하나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하고, '중이 절이 싫으면 떠나는 수 밖에.' 라는 말입니다. 참으로 이상합니다. 우리나라는 농경사회였고 씨족사회였으며 조선 후기까지는 한자문화가 지배한 사회였는데, 한글로 이치에도 닿지않는 저런 말들이 어떻게 보편적으로 쓰여졌을까요? 오늘도 점심식사를 하며 옆의 친구들에게 물어봤습니다. "너는 사촌이 어느 날 갑자기 부자가 된다면 좋으냐 싫으냐?" 모인 친구들 모두 "좋다" 합니다. 이것이 참으로 진실 아닙니까? 나와 가까운 이의 생활이 나아지면 혹 내게도 국물이 있을까 다소 기분 좋은 것이 사실이 아닙니까? 예전 농사를 주로 하던 마을에서 사촌이 땅을 사면 일자리도 늘어나고 벌이도 남보다 나아졌을텐데 왜 배 아파했을까요. 좋아했을거라는 생각이 정상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직장이나 단체 생활을 하면서 어떤 이가 조직의 불합리나 불공정함을 얘기하면 누군가가 슬그머니 동조하는 모양새로 하는 말이 '중이 절 싫으면 떠나야지' 입니다. 절에서 생활하는 중이 그것도 속세를 떠나온 중이 왜 절이 싫겠습니까? 또 떠나면 어디로 갑니까? 참으로 생각없고 무책임한 말입니다. 그래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왜 저런 말도 안되고 이치에도 맞지 않으며 무책임한 말들이 언제 시작되었으며 무슨 까닭으로 보편화되어 우리 스스로를 옭매이고 있을까? 가장 최근에 듣기 싫은 말이 하나 추가되었습니다. '통일은 대박' 통일이 되면 단군의 자손들이 하나로 합쳐지고, 세종대왕께서 편찬하신 한글을 쓰는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 이외의 좋은 점이 무엇일까요? 점점 팍팍해진 삶으로 어제도 오늘도 삶을 내던지고 저승으로 향한 대한민국 국민의 수가 세계에서 제일로 많은데, 통일이 되면 그 수가 획기적으로 줄어든다는 것일까요? 아직까지 팍팍했던 삶이 통일이 되면 로또 당첨된 듯이 하루 아침에 확 좋아질까요? '엽전은 맞아야 돼.'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중이 절이 싫으면 떠나야지.' 이 말들은 역사도 없고 근거도 없고 그래서 물을 대상자도 없지만, "통일은 대박" 이란 말은 처음 쓰신 분도 계시고 자주 사용하시는 분들도 계시니 제발 속 시원히 설명해주시기를 바래봅니다. 그래야 저도, 우리 후손들도 확신에 찬 어조로 과연 '통일은 대박' 이라 외칠 수 있을 겁니다. <저작권자 ⓒ 세종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