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근호 변호사( 대전지검 전 검사장.부산고검 전 검사장| 입력 : 2019/08/26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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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난해에 이어 행복마루 2기 공채 신입사원을 6명 뽑았습니다. 그들이 출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출근하면 저에게 인사를 옵니다. 그들과 차를 나누며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저는 그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주어야 그들의 평생직장 생활에 도움이 될까 생각하였습니다.
첫 직장의 첫 출근날은 평생 기억이 생생한 법이거든요. 저는 1983년 9월 1일 서울지검에 새내기 검사로 첫 출근을 하였습니다. 그날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방에 도착하니 윤기선 계장과 여직원 현양(오래되어 이름은 기억나지 않습니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는 여직원을 김양, 이양 이렇게 성 뒤에 '양'을 붙여 부르던 시절이었습니다.
'잘 부탁한다'라는 의례적인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스물세 살의 어린 검사는 사무실 운영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제 이분들로부터 하나하나 배워 나가야 합니다. 그들은 제 부하가 아니라 제 멘토인 것입니다.
윤 계장님은 저보다 열댓 살은 더 많았을 것입니다. 현양은 사실 현양이 아니라 현 여사였습니다. 그 당시로는 보기 드물게 결혼을 하고도 계속 근무하는 여직원이었고 서른쯤 되었을 것입니다.
오전에 오십 줄은 되어 보이는 변호사 한 분이 축하 인사를 하러 방에 들렀습니다. 저는 어떻게 서로 인사를 하여야 할지 몰라 뻘쭘하게 서 있었더니 그분이 고개를 숙여 축하한다고 말씀하시고 멋쩍게 잠시 서 계시다가 다른 방에 인사를 하러 가야 한다며 서둘러 나가셨습니다.
그 변호사님이 나가시고 윤 계장님은 이렇게 코치해주었습니다. "검사님, 변호사님들이 방에 들어오시면 나이와 관계없이 그분들이 검사님을 예우하는 입장이시니 검사님이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십시오. 상대방이 먼저 손을 내미시기는 어려운 상황이십니다. 안 그러시면 아까처럼 어색한 장면이 계속될 것입니다."
저는 윤 계장님보다 현 여사(나중에는 이렇게 호칭하였습니다.)가 더 어려웠습니다. 오후 무렵 물을 한잔 먹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물을 가져다 먹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현 여사에게 물을 가져다 달라고 시키면 간단한 일이지만 큰누나 벌인 현 여사에게 무엇을 시키는 일이 쉽지만은 않아 한 시간쯤 고민하다가 부탁한 기억이 납니다.
퇴근 시간 6시가 되었습니다. 현 여사가 제 책상 앞으로 다가옵니다. "검사님 아시겠지만 저는 결혼을 하였습니다. 애들 때문에 집에 가보아야 해서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아! 예~" 현 여사는 가방을 싸 들고 먼저 퇴근하였습니다.
그날은 무슨 이런 경우가 있나 싶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현 여사는 서울지검 최고의 여직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새내기 검사에게 배치한 것이었습니다. 저를 잘 가르쳐주라는 배려였던 것입니다.
첫 직장 첫 출근일은 이처럼 어색합니다. 공간도 낯설고 사람도 낯섭니다. 그렇게 시작한 검찰 생활을 28년 하였습니다. 그 경험을 살려 공채 새내기 직원들에게 한마디 해 줄 차례입니다. 모두 서른 미만의 젊은 친구들입니다.
"편하게 앉아요. 허리도 의자에 기대고, 지금 벌서는 시간이 아니에요. 그저 편하게 나하고 이야기하는 시간이에요. 많이 긴장되지요. 아마 빨리 이 방에서 도망치고 싶을걸.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점점 익숙해져요."
"오늘 처음 만났으니 어떻게 하면 직장생활에서 성공할 수 있는지 팁을 두 가지 줄게요. 내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터득한 거예요."
"첫째, 빨리 자신이 머무는 공간을 지배할 능력을 가져야 해요. 오늘 이 사무실은 너무 어색할 거예요. 자기 자리도 어색하고. 물론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죠. 그러나 그것은 저절로 일어나는 일이에요.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요. 그 공간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려야 해요.
일 년이 지나도 뭔가 사무실에 안착을 못 하고 빙빙 도는 직원이 있는가 하면, 한 달만 지나도 몇 년을 근무한 사람처럼 자리를 잡고 다른 사람을 인도하는 직원이 있어요. 무엇이 그런 차이를 만들까요?
공간에 머무는 시간이 많을수록 공간에 대한 지배력이 생겨요. 특히 혼자 공간에 머무는 시간이 많을수록 공간에 대한 지배력은 자신도 모르게 생겨요. 만약 어느 휴일 출근하여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몇 시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시간을 보내 보세요.
그다음 월요일 출근하면 공간이 친구가 되어 인사를 할 거예요. '안녕, 어제 혼자 출근하여 심심한 나와 같이 지내줘서 고마워.' 농담이 아니에요. 진짜 그런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나는 약속장소에도 30분 먼저 가서 그 공간과 친구가 되려고 노력하지요. 그러면 공간을 지배하게 되니까요. 그렇다고 내가 휴일 근무를 하라는 뜻에서 하는 말은 아니에요.
둘째, 상사와 빨리 친해지는 노력을 하여야 해요. 사실 직장생활에서 모든 것은 상사가 쥐고 있어요. 업무 지식, 근무 지혜, 나에 대한 평가 등 모든 것을 상사가 가지고 있지요. 그런데 상사로 근무할 때 보면 모두 내 방에 들어 왔다가 금방 도망치려고 해요. 사적인 이야기는 전혀 안 해요. 그러면 어떻게 그 상사와 친해지겠어요.
나는 평검사 시절, 부장검사님과 친해지는 방법을 터득 하려고 노력하였어요. 가만히 관찰하니 부장검사님이 오전에는 한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오전에 찾아뵙기로 마음먹고 대화 소재를 찾았어요.
부장님은 장관, 총장님의 동향과 다른 청 사정에 궁금해하신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방에 놀러 오는 기자들을 통해 그 뉴스를 수집한 다음 부장님 실에 들어가 그런 이야기를 하면 부장님도 아시는 내용을 이야기하며 서로 한 시간가량 이야기꽃을 피웠지요.
그러다가 업무상 궁금한 것도 곁들여 여쭤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업무에 반영하였지요. 수사 방향이나 보고서 작성 방향 등을 상사로부터 대강의 지침을 받고 하는 것과 깜깜이로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지요. 훗날 상사로부터 일 좀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이 덕분이기도 해요.
오늘 첫 출근하였지만 이 기억은 오래 갈 겁니다. 앞으로 배울 것이 산처럼 많겠지만 내가 이야기해준 두 가지 팁을 잘 새겨 실천한다면 훌륭한 직장인으로 성공할 거예요. 다시 요약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