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장수 혼자서 싸우는 게 아니다. 삼국지를 읽다보면 ‘장졸(將卒)이 하나가 되어’라는 대목이 그것이다. 손자병법에도 ‘지신엄인용의(智信嚴仁勇義)’가 있으면 백번 싸워도 낭패당하는 일이 없다고 했다. 그중에 리더의 ‘지(智)’는 지혜, 즉 슬기로움이다. 하늘과 땅의 형세, 그리고 아군과 적군의 병력을 깨달아 판단할 능력이 있는 자라야 장수다. 또 하나는 장졸 간 서로의 믿음이다. 장수의 뜻을 병사가 알고, 병사의 마음을 장수가 읽어내는 능력이다. 이심전심 통해야 승리할 수 있다고 꼽는다. 엊그제 벤투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팀이 평양 원정경기도 그렇다. 다행스런 것은 벤투 감독이 선수들을 신뢰하고, 선수 개개인이 감독을 믿은 탓에 불상사 없이 귀국했다. 이 모든 것은 감독이, 주장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김대중(DJ) 대통령이 집권 후반부에 당시 전직 대통령들과 여야 정당대표를 청와대 초청해 오찬을 가졌다. IMF의 터널을 빠져나올 무렵으로 기억된다. 간담회에서 DJ는 IMF극복을 위한 내수 진작에 대한 걱정을 화두로 올렸다. 그날 제일 많이 말을 한 이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다. 다들 조심스러워하는데도 전 전 대통령은 집권 때의 예를 들며 위기극복을 주장했다. 그의 답은 “군인이던 제가 경제를 뭐 알겠습니까. 대통령이 다할 수 없습니다. 유능한 참모들에게 맡기세요”였다. 그리고 버마(미안마) 아웅산에서 순직한 고(故) 김재익 경제수석의 일화도 들려줬다. 나랏일은 대통령이 다 할 수 없다. 축구경기에서 감독 혼자서 다해 이길 수 는 없듯이 말이다. 주장 손홍민 혼자서 11명의 선수 몫을 혼자 다할 수 없는 노릇이다. 대통령이 감독이라면 장관과 청와대 참모는 11명의 선수들이다. 지난주 문재인 대통령이 관련 부처 장관들을 모아 경제장관회의를 가졌다. 지난 12월 이후 10개월 만이다. 경제사령탑인 홍남기 부총리가 외국 출장 중인데도 회의를 연 것은 이례적이다. 최근 문 대통령이 충남 아산의 삼성전자디스플레이나 현대자동차 기공식이나 투자 관련 행사를 찾는 등 경제 현장 행보는 다행이다. 늦었지만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던 낙관적인 전망이 사실인지 살핀다는 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는 문대통령과 청와대 참모, 정부, 그리고 여권 일각에서 경제지표를 오독(誤讀)했거나 무시했다는 비판이 왜 나오는 지를 스스로 깨달았기를 기대한다. 아직도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 등은 우리 경제가 ‘디플레이션’, 내지 ‘R(경기침체)의 공포’를 과장된 해석이라는 반론을 내놓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의 말마따나 경제상황이 엄혹한 시기에 문 대통령이 경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런데 어딘가 어색하고 낯설고 불편해 보인다. 문 대통령은 최근 ‘우리 삼성’, ‘미래차 1등’과 같은 발언을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지난 2년 반 동안 보여준 반(反)기업· 반시장 정책기조였다. 그래서 어느 쪽이 진심인지 헷갈린다. 이런 경제론은 정부가 스스로 만든 것이다. 기대를 갖게 했던 ‘혁신성장’은 획일적 규제에 무기력하다. 평화가 경제라며 내놓은 ‘북한 올인’ 외교역시 글로벌 무역분쟁에서 맥을 못추고 있다. 그러니 곳곳에서 기업현장의 비명은 방기한 채 친(親)노동조합으로 일관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 경제의 10년, 20년 50년,100년 국가경제를 폭넓게 조망할 안목도 없었다. 내놓은 정책들 간의 적합성도, 장단기 효과에 대한 성찰도 없이 그저 ‘두더지 잡기식’ 경제 운용을 해 왔다는 전문가의 지적은 쓰지만 맞다. 그러니 서민들이야 제아무리 그럴듯한 정책이라도 체감할 수 있을까. 솔직히 경제기사를 쓰는 입장에서 보면 최근 우리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여건은 ‘악화 일로’이다. 경제지표가 나올 때마다 뒷걸음질이다. 급기야 한국은행은 지난 16일 기준금리를 연 1.25%로 내린 것에 주목해야한다. 한은의 금리인하는 경기 둔화 조짐이 갈수록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냐면 디플레이션 진입을 우려할 정도다. 금리인하는 저(低)물가현상까지 반영해 내린 결정이었다. 청와대와 경제부처 관계자들이 이 수치를 제대로 읽지도, 전문가들의 얘기를 제대로 듣지 않아서다. 지금 국내외 기관마다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발표된 수치 평균이 지난해 하반기 3% 안팎에서 1.9%로 낮아졌다. 1%대 성장이란 끔찍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수출은 10개월 연속 지난해 같은 무렵보다 마이너스 성장이고 설비투자도 두 자릿수 감소다. 재정을 쏟아 부은 일자리는 어떤가. 그런 일자리는 60대 이상 노인층과 36시간 미만에서만 늘어날 뿐이다. 단단해야할 40대에서는 20개월째 감소세다. 여기에 경제의 버팀목인 소비도 부진해지고 있으니 총체적인 위기상황이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진, 경제부처 관계자들은 아직도 현실감각에 무뎌있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대외여건을 감안할 때 선방하고 있다’, ‘한국 경제가 탄탄하다’는 논리가 그것이다. 문 대통령은 경제장관회의에서 "같은 달 기준 두 달 연속 역대 최고 고용률을 기록했고 청년 고용률은 16개월 연속 상승하고 있다"며 긍정 평가했다. 많은 청와대 밖의 많은 전문가들은 유리한 정책의 성과를 떼어 내 강조하거나 부각하는 식의 해석은 곤란하다. 이제 해가 바뀌면 50~299인 중소기업에도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된다. 유예가 필요한 정책이다. 업종별로 각기 다른 근로형태에 유연성이 적용되야함은 물론이다. 한쪽에 치우친 노사정책도 다시 점검해 상생을 키우도록 정부가 나서야하는 것이다. 어느 언론인은 오도된 경제관을 결정권자에게 심는 것은 더 큰 문제라고 한다. 더욱이 한참 잘못 끼운 단추를 바꿀 생각을 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이 챙기고 정부가 성과를 내겠다며 다그치면 기업은 겁을 먹는다. 어설프면 하지 말거나, 하려거든 자성과 함께 꼼꼼한 진단부터 해야 옳다. <저작권자 ⓒ 세종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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