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모금의 세숫물 도스토옙스키가 쓴 『죽음의 집의 기록』을 보면 도스토옙스키가 시베리아 옴스크 수용소 도착한 다음날, 그러니까 1850년 1월 24일 아침의 모습을 기억해 적어 놓은 것이 있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이 유형수들의 세수하는 장면이다. 물을 한 모금 머금은 채 조금씩 뱉으면서 그 물로 세수를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과거 물이 부족했던 몽골 유목민들의 세수 방식과 같다. 그런데 여기엔 세수에 대한 이야기는 있어도 양치질에 대한 말은 아예 들어있지도 않다. 양치가 일상화 된 것은 유럽에서도 대략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라고 한다. 따라서 도스토옙스키 시대에는 양치가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귀족들과 부자들은 소금으로 이를 닦았다. 당시엔 소금 값이 비싸서 소금 양치는 돈 있는 사람들만 가능했다. 그러나 양치질이 세면의 중요한 일부가 된 20세기에 들어서서도 나치 독일의 유태인 수용소에서는 그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유태인이란 이유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갔다가 극적으로 생존한 저명한 정신의학자 빅터 플랭클(1905~1997)박사는 그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정태시 번역, 제일출판사,1982)에서 수용소에서의 경험에서 보면, 의학교과서의 내용과는 다른 것이 많았다며 그 증거들을 제시하면서 ‘인간은 모든 것에 익숙해 질 수 있는 존재“라는 도스토옙스키의 말을 인용한다. 나치 수용소에서 떠올린 도스토옙스키의 말 “수용소 생활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이를 닦을 수 없었고 또한 음식물의 현저한 비타민 부족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가장 건강을 위해 영양을 섭취할 때보다도 건강한 이와 신체를 보존했다는 사실이다. (···) 흙일을 한 손은 더럽고 상처투성이인데도 불구하고 한 번도 상처가 곪아 본 일도 없었다는 사실이다(물론 동상에 걸린 것은 별문제이지만). 또한 이전에는 옆에 방에서 조그만 소리만 나도 잠이 깨곤 했는데 모로 꼭 끼어 누워서 귀 속에 대고 코를 골아도 눕기가 무섭게 깊은 잠이 들곤 했다. 이리하여 또스또예프스끼가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인간에 대하여 인간은 모든 것에 적응할 수 있다고 한 것이 얼마나 정확한 판단인가를 재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이 모든 경우에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인가 아닌가, 또한 어느 범위까지 사실인가를 우리들은 말할 수 있을 것이라 하여 우리에게 묻는 이가 있다면 우리는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우리들이 어떻게 해서 적응할 수 있었는지는 제발 묻지 말기를 바란다.사실 도스토옙스키가 유형생활을 한 옴스크 수용소나 솔제니친이 수용되었던 소련시절의 수용소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등 나치의 수용소는 훨씬 열악했다. 우선 목적이 달랐다. 러시아나 소련의 수용소는 죄수들을 교화하고 노역을 시키는 것이 목적이었고 형기가 있었다. 일정 형기를 마치면 살아서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독일 나치의 유태인 집단 학살 수용소에 들어 온 사람들은 석방 날짜 같은 것이 없었다. 나치 수용소에서도 수용자들을 노역에 동원하곤 했는데, 노역이 불가능한 사람들은 바로 가스실로 보내졌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언제 수용소에서 나갈지 알 수 없는, (언제 죽을지도 알 수 없는) 그런 것들이 크나큰 고통이었다고 후에 술회했다. 플랭클 박사의 인용문 중에 “건강한 이와 신체를 보존했다”는 것은 아무래도 수용소 초기의 상황이었던 것 같고,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말기에는 하루 한 끼 밖에 주지 않았다. 물이나 다름없는 스프와 조그만 빵, 여기에 추가로 20그램의 마가린이나 한조각의 작은 소시지, 또는 조그만 치즈 조각 등이 전부였다. 이렇게 부실한 하루 한 끼의 식사로는 모두가 영양실조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다. 플랭클 박사는 “우리는 약간의 헌 누더기를 걸친 해골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를테면 유기체가 스스로의 단백질을 몽땅 먹어 버리고 근육조직이 삭아져 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우슈비츠와 주변 수용소에서 2차 대전 직후 연합군에 의해 구출된 생존자들의 사진을 보면 피골이 상접하여 곧 죽을 사람처럼 보이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플랭클 박사가 그의 저서에서 도스토옙스키의 말을 정확하게 인용한 것을 보면 그가 도스토옙스키의 심리 분석에 많은 영향을 받은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의 정신분석학의 발전적 계승자로서 도스토옙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을 한번쯤 정독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저작권자 ⓒ 세종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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