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지금 가장 큰 소망은 새 대통령 취임 때까지 내 자리가 채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My most fervent wish is that I will not be replaced until a new president is installed.)” 지난 9월18일 미국 진보 진영의 아이콘으로 추앙받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이 세상을 떠나면서 손녀 클라라 스페라에게 남긴 유언이다. 한달여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통령 선거(11월3일)가 고(故) 긴즈버그의 유언(우려)이 예언처럼 전개되고 있다. 공화당 대선 후보인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언론 등을 통해 대선 불복 가능성을 시사하며 결국 대법원까지 갈 것이라고 말해 미 전역에 허리케인급 폭풍이 불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폭스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이 말하기를 연방대법원이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승리로 결정하면 바이든이 이기는 것이라고 한다. 동의하느냐'라는 질문을 받자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하지만 거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고 본다" "이 투표용지들은 공포스러운 쇼"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우편투표’의 조작 가능성, 부정선거 문제를 집중 거론해왔다. 그런데 지난 9월18일 긴즈버그의 사망으로 자신의 이같은 주장을 후임 대법관 선임과 연계시키면서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관은 9명이다. 현재 대법관은 보수(5명), 진보(4명, 긴즈버그 전 대법관 포함)로 분류되고 있다. 긴즈버그가 공석이 되면서 보수와 진보가 5대3으로 돼 있다. 하지만 보수성향인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사안에 따라 진보와 보수를 오가는 인물이어서 4대4의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만약 대선이 끝나고 우편투표 문제가 대법원으로 갈 경우 현재의 대법관 8명 체제로는 어느 후보에게 손을 들어줄지 모를 수 있다. 그래서 트럼프는 한달여 밖에 남지 않았지만 선거에 앞서 자신의 입맛에 맞는 보수 인사를 대법관에 앉히려는 속내를 갈수록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은 당연히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대선 이후 차기 대통령에게 후임 인사권을 갖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 소속의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 등은 "여기는 북한도, 터키도 아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논란이 커지자 미국 상원은 ‘평화로운 권력이양 지지를 재확인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고 나섰다. 여당인 공화당이나 백악관도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수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케일리 매커내니 백악관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대통령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의 결과를 수용할 것"이라며 진화 작업을 벌였다. 긴즈버그 대법관의 사망으로 촉발된 ‘대선불복’ 파장은 트럼프의 머릿속에 어느정도 계산된 수순일 수도 있다. 대법관 후임 문제가 불거질수록 이번 대선 레이스가 인종문제로 나뉘어지듯, 전선이 보수.진보로 확연히 구분되면서 자신의 집안 토끼를 확실히 잡으려는 승부수일 수도 있다. 이와함께 대선과는 별개로 종신직인 미국의 대법관은 매코넬 상원 원내대표(공화당)가 “세상에서 가장 큰 일이 새로운 판사를 임명하는 것”“10명의 대사보다 1명의 대사가 중요하다”고 할 정도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동성애 낙태 총기소지 등 미국 사회의 역사적 이슈를 좌우하는 대법관 인선은 ‘교육 100년 대계’와 같은 개념이다. 미국과 같이 오랫동안 민주주의를 실천해온 나라에서 ‘투표 조작’ 선거불복‘ 등이 선거의 키워드로 등장하는 것이 국외자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낯설다. 그런데 긴즈버그가 마지막 순간에 남긴....“지금 가장 큰 소망=새 대통령이 후임 결정”이라는 다소 소름끼칠 수도 있는 예언의 의미를 곱씹어보게 된다. 이것이 우리 알지 못했던 미국의 진면목인가. <저작권자 ⓒ 세종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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