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4일 러시아의 불법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두 달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전세계인들은 러시아군의 폭격에 의해 가족을 잃고 울부짖는 많은 우크라이나인들과 수많은 피난민 대열, 러시아군에 의해 저질러진 집단 학살 현장의 모습, 그리고 도시 전체가 폐허로 변해버린 아조프해 연안도시 마리우폴 등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TV 등을 통해 목격하면서 그 끔찍함에 몸을 떨고 있다.
처음에는 강대국과 약소국간의 이 전쟁이 오래 가지 않을 것이란 예측이었다. 그러나 젤렌스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우크라이나인들의 강력한 저항과 러시아의 형편없는 전쟁 수행 능력으로 인해 전쟁의 양상이 장기전으로 변화해 가고 있다. 러시아가 전쟁 두 달 동안 입은 손실의 규모는 우크라이나의 전체 군사력만큼 될 것으로 추정된다는 보도도 있었다. 러시아군이 졸전을 거듭했다는 이야기다.
러시아는 수많은 러시아군 희생자를 낸 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포위 공격을 포기하고 이달부터는 군사력을 동부 돈바스 지역과 아조프해 연안 도시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가 체첸군 등을 투입해 두 달간이나 집중 공세를 벌인 마리우폴의 경우, 러시아는 완전히 장악했다고 선전하고 있는 반면 우크라이나는 아직도 양측이 교전중이라고 반박한다.
서방측은 지난 두 달 사이에 러시아측은 1만 5천에서 2만명에 이르는 병력과 5백대 이상의 탱크, 8백대 이상의 장갑차, 또 많은 수의 전투기와 전투헬기를 잃은 것으로 추산한다. 손실된 500대의 탱크는 러시아군 전체 탱크수의 20%에 해당된다. 게다가 흑해함대를 지휘하는 기함인 500명의 승조원이 타고있던 순양함 모스크바호가 지난 13일 침몰 함으로써 러시아는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우크라이나는 모스크바호가 우크라이나군이 발사한 넵튠 지대함 미사일에 의해 격침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러시아는 자체 화재 사고로 인한 것이라고 발표했으나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주장에 무게를 두고 있다.
관측통들은 러시아가 5월 9일의 제2차 세계대전 승전일까지 돈바스 지역과 마리우폴을 완전 장악해 이를 1차적 전쟁 목표의 달성으로 선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마리우폴은 돈바스 지역과 크림반도를 연결하는 중간에 자리 잡고 있으므로 우크라이나 측으로 볼 때 마리우폴의 상실은 아조프해 연안 지역 전체를 러시아에 내주는 것이나 다름없는 결과가 된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이 지역을 두고 양측의 치열한 공방전이 예상된다.
미국 등 서방측은 우크라이나에 각종 무기와 전쟁물자의 제공을 계속하고 있다. 그것이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도 계속하고 있지만 경제제재의 효과는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는 것이므로 경제제재로 포성을 멈추도록 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미국은 공개적인 무기 지원을 통해 실제적으로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을 돕고 있으나 그정도 역할에 그쳐서는 안 된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구 소련으로부터 독립했을 때 핵 폭탄 약 5천 발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170기 이상을 보유한 세계 3위의 핵보유국이었다. 그러나 1994년 미국, 영국, 러시아가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통해 핵무기를 포기하는 조건으로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영토보전을 약속했다. 이후 우크라이나는 보유하고 있던 핵무기와 핵물질을 폐기하거나 러시아로 보냈다. 당시 양해각서에는 구 소련 국가 중 우크라이나와 카자흐스탄과 벨라루스가 포함되어 있었다. 다른 두 나라는 핵무기의 규모가 우크리아나만큼은 크지 않았다.
그런데 양해각서가 체결된지 30년이 채 지나지 않아 러시아는 각서를 그야말로 헌신짝처럼 던져 버리고 국경을 불법 침입해 우크라이나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우크라이나는 당시 강대국들의 약속을 믿고 핵무기를 포기한 것을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어느 나라가 강대국들의 약속을 신뢰하겠는가?
미국은 양해각서에 서명한 나라 중 대표격인 나라다. 전쟁 발발 후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 미국은 연일 러시아를 강도 높게 비닌하고 있지만, 병력 파견 등 직접적인 개입에는 거리를 두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나토 동맹국이 아니어서 개입할 명분이 없다고 하지만, 미국은 부다페스트 양해각서 서명의 당사자로서 약속한대로 우크라이나의 안보를 지켜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이 지난해 8월 아프가니스탄에서 야반도주하듯 발을 뺀 뒤 반년만에 터졌다. 아프간에서 철군한지 얼마 되지 않아 미군을 또다시 전사자가 나올 것이 뻔한 외국의 전쟁터에 보내려고 하지 않는 것이 미국의 분위기다. 따라서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은 계속 할망정 가까운 시일내에 병력파견 등 직접적인 개입을 할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러시아가 핵무기나 다른 대량 살상무기를 사용할 경우, 그것은 인류 전체에 대한 도전이 되므로 상황이 달라진다. 전쟁 개입의 명분이 분명하면 미국도 참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볼 때 미국은 러시아의 힘을 빼는데 주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쟁의 여파로 지금까지 비 나토 국가였던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가입 추진은 분명히 러시아를 당황스럽게 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번 전쟁에서 군사적 취약점을 너무 많이 노출시켰다.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과 제 3차대전으로의 확대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이 시점에서 벨라루스 정도 외에는 함께 싸워줄 나라도 없는 러시아가 그런 마음을 먹기는 어려울 것 같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조속한 종식을 위해 군사 외교적으로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 미국이 보여온 소극적인 태도는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의 피맺힌 절규에 미국은 당연히 커다란 책임이 있음을 거듭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인들은 미국의 향후 대응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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