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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그리움의 미학

송장길 / 언론인, 수필가 | 기사입력 2022/05/11 [17:06]

[수필] 그리움의 미학

송장길 / 언론인, 수필가 | 입력 : 2022/05/11 [17:06]

 활짝 웃는 아내의 시선에 물기가 어리어 있었다. 생명의 원천인 수분이 거기까지 올라와서 반짝이다니! 원천이 본성이 되어 감동을 주는 격이었다. 홍콩의 카이탁 공항에서 기다리던 남편에게 다가오는 30대 후반 여인의 표정은 그렇게 응축된 감정의 모자이크였다. 서러움이 녹아 기쁨이 되는 순간이랄까? 신기한 듯, 두려운 듯 두리번거리며 올망졸망 따라오던 어린 남매는 아비를 보자 용수철처럼 달려와 품에 안겼다. 1981년 봄 방송국 특파원으로 발령받고 서둘러 부임해서 가족과 몇 달 떨어져 지내던 터라 멀리서 숙성된 그리움이 만나 불꽃처럼 튄 뒤 사위었다. 무거운 트렁크들을 자동차에 실으면서 아내와 아이들이 힘든 이사 준비를 하면서 그리움과 기다림이 켜켜이 쌓였겠지 싶었다.

 

▲ 송장길 / 언론인, 수필가(수필문우회, 계수회 회원)


이튿날에는 남편이자 아비의 눈시울이 촉촉이 젖었다. 점심 때 일터 가까이 불렀더니 더듬더듬 찾아온 가족의 모습은 천생 넓은 강 위에 떠있는 세 마리의 철새였다. 길도 생소하고 말도 안 통하며 인종과 문화가 전혀 다른 낯선 땅으로 날아와서는 다시 북적이는 타 인종 속에서 한 사람을 찾아 나서니 얼마나 황당했을까? 굳은 표정으로 전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정차장에 나가 기다리던 마음을 촉촉히 적시었던 것이다. 그 노마드들은 5년 뒤 다소 성숙한 차림으로 LA의 탐 브래들리 공항에 쪼르륵 나타났다. 세계를 이끄는 선진 최강국의 기세에 놀란 듯 좌우로 눈빛을 반짝이며 출구 통로로 걸어 나왔다. 맞이방에서 가족들과 번갈아 포옹하며 반가움을 나눌 때 껴안는 완력이 세게 느껴지고, 심장의 박동이 쿵쿵거려서 그동안 기다림의 강도가 어떠했는지 짐작되었다. 이 때에도 특파원으로 먼저 부임하고 두 달 뒤에 해후한 참이었다.

 

구름다리를 사이에 두고 이쪽은 그리움이고 저쪽은 기다림이다. 그리우니까 기다려지고, 기다리는 마음에는 그리움이 가득 고여 있기 마련이다. 동물과 다른 인간의 특성은 희망을 갖는 것이고, 희망은 대체로 그리움과 기다림을 수반한다. 기다림이 이울어도 그리움은 쉽게 증발하지 않는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만나지 못하면 그리움이 얼마나 진할까? 가슴 속에 응어리가 되어 아프겠지. 아픔을 인내로 다스리고 미래를 위해 승화시킨다면 그 심성은 수정체처럼 맑고 빛날 것이다.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을 극진히 그리워하며 사는 삶이야 진정 진국의 경지가 아닌가!

 

탐 브래들리 공항은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색깔들이 뒤섞여 붐비는 나들목이다. 온갖 인종들이 오가며 물결처럼 흐른다. 그 물결 속에서 어머니의 모습이 일순 시야에 포착됐다. 아들의 눈에는 인파에 끼어 나타난 어머니가 마치 움직이는 발광체로 보였다. 단아한 풍채와 표정, 손과 발의 움직임, 눈빛 등에서 오묘한 광채가 발산되는 듯했다. 그 익숙한 동선들이라니! 아들은 짜릿함을 느끼며 어머니를 소리 높여 불렀다. 움칠한 어머니는 반사적으로 아들 쪽으로 뛰어나오려는 듯한 몸짓을 보였으나 안내자와 이야기하면서 이내 침착 해졌다.

 

어머니는 여행자들의 결에 섞여 가까이 다가와서는 못내 손등으로 두 눈을 훔쳤다. 항공사 승무원의 부축을 받으며 망칠(望七)의 병약한 노구를 이끌고 아들네를 찾아온 방문길이었다. 어머니는 20대 후반에 배필을 여윈 청상과부로 산수(傘壽)를 넘기며 사시다가 지아비 곁으로 떠났다. 그 괴로운 삶의 진수를 누구인들 깊이 알 수 있으랴. 외아들인 아버지가 갓 장년에 접어들어 요절했을 때 집안의 통한은 잔인할 정도로 온 가정을 짓눌렀다. 30대 전후의 청년이 당시에는 괜찮은 정미소를 창업하고, 큰 집도 짓고, 논과 밭을 늘이다가 졸도하였으니 그 충격은 인근 지역을 다 놀라게 할 지경이었다.

 

어머니는 비통의 늪에 빠져만 있을 겨를이 없었다. 위기의 집안일을 건사하며 자식들을 키우는 일이 급했던 것이다. 내색은 않았지만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는 비장함이 어찌 고통스럽지 않았을까? 늦은 밤에 홀로 바느질을 할 때, 추운 겨울 부엌에서 조리를 할 때, 장독대에서 정화수 떠놓고 무언가를 기구할 때 남 몰래 눈물을 닦는 모습이 우연히 눈에 띄곤 했다. 어머니의 슬픔은 감추어지고, 극복되고 있었던 것이다. “기죽지 말고 당당해라”, “아버지가 기뻐할 만큼 훌륭한 사람이 돼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간곡한 훈육은 작고하신 남편에 대한 그리움의 다른 표현이기도 했을 것이다.

 

미국이 모두 낯설고 새로웠을 어머니를 모시고 우리 가족은 서너 달 동안 단란했다. 시장과 음식점을 두루 다니면서 동서양 문화의 다른 면면을 보여드렸고, 주말에는 캘리포니아 주변의 구석구석을 함께 여행했다. 그리움이 열매를 맺는 기쁨의 순간들이었다. 가는 곳마다 감탄하며 기뻐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아들에게는 고맙고 뿌듯했다. 자지러지는 기쁨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고 했던가. 어느 주말 아침 집 근처 가족식당에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어머니가 눈치를 살피는 듯싶더니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비쳤다. 좀 더 머무시라고 거듭 만류해도 결심은 바뀌지 않았다. 무슨 불편한 일이라도 있으세요 어머니?” 아니, 그런 거 없어. 한국이 더 편해서 그래. 여기서는 친구들도 없고 좀 지루할 때가 많아 며칠 뒤 우리 가족은 탐 브래들리 공항에 나가 어머니를 배웅했다.

 

어머니가 손수건으로 자꾸 눈을 닦으니 모두가 울적한 심정으로 작별인사를 나눴다. 헤어지기 전에는 어머니가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신신 당부하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너무 무리하게 일하지 말고, 너무 힘들게 살지 말아라. 보기에 안쓰러웠다 그제서야 아차! 하는 느낌이 일었다. 어머니가 서둘러 한국으로 떠나려는 이유가 그 당부에 실려 있었다. 아들네가 모두 바쁘고 힘들게 살고 있다고 판단하자 짐이 되지 않기 위해 결행한 귀국 행이었음이 분명했다. 어머니는 여행자 체크 포인트를 지나서 항공기 탑승 통로로 들어가면서 연상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사람들에 가려지면 틈새를 비집고 얼굴을 들어내곤 하다가 결국 모습을 아주 감추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서울에서 아우가 어머니의 위중을 알리는 급전을 보내왔다. 황급히 항공편을 구해 날아가 보니 어머니는 미국의 아들을 애타게 기다리다가 운명하신 뒤였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사신 긴 생애, 그 그리움을 모성애로 환치하여 자식들에게 쏟아분 삶은 그리 물리적 단원을 내린 것이다. 어머니의 방에는 오래된 경대와 안경, 소소한 유품들이 덩그렇게 남아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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