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초순 북인도 라다크에 갔던 길에 라다크의 중심도시 레(Leh)에서 150여km 떨어져 있는 해발 4300m 위의 판공초 호수에 하루일정으로 다녀 온 일이 있다. 한국에서의 요즘 상식으로 보아선 150여km면 왕복에 한나절이면 충분하겠지만. 이곳은 험난한 절벽길이어서 왕복에 보통 10~12시간을 잡는다. 판공초 호수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일행은 희한한 장면을 목격했다. 길옆에 차가 서길래 내려서 보니 야생동물인 마못(marmot)이 사람들 앞에서 스스럼없이 재롱을 부리는 것이었다. 크고 작은 마못 서너 마리가 사람들 앞에서 놀고 있었다. 마못은 주로 풀이 많지 않은 고산 평원에 사는 가장 큰 다람쥐과 야생동물이다. 몽골 등에서는 인기있는 사냥감이며 독수리들이 좋아하는 먹이중 하나이기도 하다. 털의 색깔은 황갈색으로 얼굴은 귀짧은 토끼를 닯았다. 꼬리를 뺀 몸길이는 30~60cm로 다리가 짧고 통통하게 생겼다. 몽골 등에서 사람을 보고 부리나케 달아나는 마못을 본적은 있는데 그런 야생동물이 이곳에서는 사람들과 이처럼 가깝게 어울리니 어찌된 일인가. 마못은 관광객에게 다가와 카메라를 만져보기도 하고 곧추서서 얼굴을 쳐다보기도했다. 사람이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하니 이처럼 편하게 노는 것이리다. 아마 전부터 사람과의 접촉이 있었을 것이다. 구멍 속에 있다가 사람이 보이니까 나온것인지, 사람들이 마못을 보고 차를 세운 것인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의 상식을 뒤집는 상황이었다. 사람이 다가가면 멀리 도망가거나 구멍 속으로 숨는 것이 여태까지의 상식 속에 있는 야생동물 마못이었는데 오히려 반대의 모습이 연출되고 있으니 얼마나 신기한가. 돌아가는 길에 만난 염소들도 그랬다. 다른곳에서는 염소도 낯선사람이 다가가면 대개 반대방향으로 종종거름을 치는데 여기서는 사람들이 있는 길쪽으로 몇 마리가 다가 왔다. 마침 일행중 한 사람이 누룽지를 갖고 있어 염소들에게 주었는데, 잘 받아먹었다. 머리나 등을 만져도 태연했다. 사람과 동물이, 심지어 야생동물까지 이처럼 평화롭게 함께 할 수 있다니 참으로 신비로웠고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티벳 불교도가 대부분인 라다크가 불심이 깊은 땅이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야생 동물도 상대가 위험하다고 느끼지 않으면 친해질 수 있다는 것을 라다크 여행을 통해 처음 알게 된 것은 매우 값지고 흐뭇한 경험이었다. <저작권자 ⓒ 세종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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