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리오의 법칙
김종우 | 입력 : 2014/11/01 [17:06]
1970년대 우리나라에 중동 건설 특수가 한 참이었을 때였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한 모 건설회사 직원이 실수로 현지인 아들을 차에 치어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서로간의 주장차이로 점점 국제문제로 비화되었습니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당시에 큰 건설시장이었고 그래서 사건의 조기 해결을 위해 당시 국무총리였던 최규하씨가 직접 현장으로 날아갔습니다. 아들을 잃은 피해자 가족은 보상도 필요 없으니 가해자의 아들을 이곳으로 불러와 자기아들과 똑 같은 방법으로 차에 치어 숨지게 하라는 주장만 강력하게 되풀이 했습니다. 그들의 주장대로 해결이 되었는지 원만하게 외교적으로 타협이 되었는지 그 후 전해지는 얘기가 없어 결과는 알 수 없습니다. 아랍권 사람들은 속이 좁기 때문에 한번 한을 품으면 죽을 때까지 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피를 부른 자에게 끝없이 폭탄 테러를 가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보복방법은 탈리오의 법칙에 근거 하고 있습니다. 탈리오의 법칙은 피해자가 입은 것과 똑 같이 가해자에게 보복하는 보복의 법칙입니다. 이 법칙은 고대 바빌로니아의 왕인 함무라비가 만든 법전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눈을 다치게 했으면 똑같이 눈을 다치게 해야 하고 이를 부러뜨렸다면 그의 이도 똑같이 부러뜨려야 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러한 보복규칙은 아마도 문제가 필요이상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생겨난 것으로 분석됩니다. 천배 만배 보복하겠다고 보복의지를 다지고 실천에 옮기면 양쪽 모두 죽음밖에 는 없는 것이지요. 옛 선지자들은 이점을 염두에 두었던 것 같습니다. 뿌리고 행한 것 만큼만 대가를 치르라는 것이지요.. 뿌린 것만큼만 거두고 노력한 것만큼만 얻으면 후환이 없습니다. 뿌린 것 보다 더 많은 욕심을 내는 데서 문제가 생겨납니다. 우리는 버려야 할 것에 너무 애착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잃어 버린 것에 대해 너무 연연해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숙일 때 숙이는 것을 모욕으로 생각하고 강한 부정만이 강자의 모습인줄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결국은 빈손으로 가는 것을 잘 알면서도 욕심의 화폭에 부정적 자화상을 그리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바로 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당한 것만큼 행해주고 뿌린 것만큼 거두는 탈리오의 법칙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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