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센스> 2월호에 실린 “정용진 부회장님, 이러시면 됩니까?”는 과연 화제거리였다. 그 서한체 칼럼의 요지는 신세계같은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영역까지 침범해 이익을 취하려고 해서 되겠느냐는 내용이다. 신세계가 수제맥주집과 주류백화점에 진출한데 대해 경고하는 여론을 담은 글이다. 이는 정용진 부회장의 외할아버지인 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의 뜻과도 어긋나는 것이라고 칼럼은 지적했다. 그런데 이 글을 읽다 보니 문득 5년전의 ‘피자논쟁’이 생각났다. 당시의 ‘피자논쟁’이나 작금의 ‘수제맥주집, 주류백화점 논쟁’이나 본질은 같다. 신세계가 내세우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모두 대기업에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정용진 부회장의 생각은 5년전이나 오늘이나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뜨거웠던 2010년의 ‘피자논쟁’ 당시의 ‘피자논쟁’은 이마트에서 어느날부터 피자를 싼값으로 대량 판매하는 문제를 두고 촉발됐다. ‘재벌 기업이 그런 것까지 해야 하느냐? 소규모 동네 피자가게들 다 죽게 됐다’는 주장과 ‘싼 값에 좋은 피자를 소비자들이 먹을 수 있으면 좋은 것 아니냐’는 것이 논쟁의 골자다. 물론 대형마트에서의 피자 판매가 처음 있던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쇼핑 온 사람들이 피자를 먹거나 사가는 정도였지, 본격적인 외부 판매를 위해 대량으로 만든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크기도 더 크고 값도 훨씬 싸니 소비자가 몰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 무렵 TV에 보도된 이마트 성수점에선 피자 한판 사려면 번호표 받고 최소한 두 시간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피자판매 문제를 둘러싸고 당시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과 나우콤 문용식 대표 사이에 트위터 상에서 설전도 벌어졌다. 문 대표는 “피자 팔아 동네 피자가게 망하게 하는 것이 대기업 할 일이냐?”며, “이마트 피자로 동네 피자가게를 위협하는 것과 다른 유통업체들이 SSM(기업형 수퍼마켓)을 개설해 골목상권을 위협하는 것이 비슷하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정 부회장은 “(이마트에서의 피자판매는) 정상적인 영업이며 그런 지적은 유통업 전체를 부정하는 견해”라고 반박했다. 앞서 한 네티즌이 “이렇게 피자를 싸게 팔면 피자가게를 하는 소상인들은 어떡하냐”고 트위터에 비판적인 글을 올린데 대해, 정 부회장은 “다른 음식도 판매되는데 피자만 문제될 게 없고, 오히려 저렴하고 맛있는 피자를 판매하는 게 목표”라며 “소비를 이념적으로 하느냐”고 응수했다. (MBC 보도, 2010.10.29) 정용진 부회장은 문용식 대표가 트위터에서 반말조로 따지고 든데 대해 “이 분 참 분노가 많으시네요”라며 “왼쪽에 서 계셔도 분노는 좀 줄이도록 하세요, 사회가 멍듭니다”라고 답했다. (매일신문, 2010,11.1) 이 말은 여러사람을 놀라게했다. ‘왼쪽에 서 계셔도 ---’라고 했다는데, 이건 한 마디로 상대방을 좌파(左派)로 규정했다는 얘기 아닌가? 대기업(이마트)을 비판하면 곧바로 좌파가 되나? 순수성을 넘어선 너무나 재빠른 반격이다. 매우 정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정용진 부회장은 젊은 기업인으로 트위터를 열심히 하면서 꽤 유명해졌다. 그래서 한층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순발력(?)있게 이념적 대응을 하니 바람직스럽지도 어울리지도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싸게 판다고 대기업이 자선사업하는 것 아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당장에는 싼 값에 큰 피자를 먹는 것이 좋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두 시간씩이나 기다려 사가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소비자의 권리다. 대기업의 입장에서는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니 비판 받는 것이 억울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다. 소비자가 싼 가격에 사서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모두 선(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계속 싸게 사먹게 되리란 보장도 없다. 물론 극단적인 가정이지만, 가령 모든 소비자들이 대기업이 만든 싼 피자만 먹게 되어서 동네의 군소 피자가게가 완전히 사라져 피자 판매를 독점하게 될 때도 대기업이 지금처럼 싼 값에 계속 팔까? 그때는 가격이고 뭐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데. 대기업이 할 것이 있고 안 할 것이 있다는 얘기다. 싸게 판다고 대기업이 자선사업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것 역시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하는 사업이다. 자신의 이익이 커질 때 남은 어떻게 될지도 생각해봐야 한다는 얘기다. 굳이 자유시장 원칙만 내세운다면 우리나라에서 중소 상인들은 설 땅이 없다. 규제 이야기만 나오면 대기업 측에서는 규제 보다는 공정경쟁을 통해 소 상공인들이 경쟁력을 스스로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자님 말씀이다. 당시 ‘피자논쟁’은 그 후 이마트측이 자제모드로 들어감으로써 진정국면에 들어간 것으로 기억한다. 국민들의 대기업에 대한 시각이 좋지 않은 것은 대기업이 어려운 약자들을 배려하지 않고 욕심나는 대로 먹어치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소비자를 위해서’라고 명분은 그럴 듯하게 붙이지만, 결국은 자기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는 것을 국민들은 다 안다. 그래서 양보하고 자제할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대기업에 대한 사회적인 반감이 커가는 상황에 이번에도 많은 이들이 우려하고 있다. 신세계가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키우는데 앞장서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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