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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세종, 조선 천년을 그리다 (29)

신현덕 / 언론인, 문학박사 | 기사입력 2015/06/12 [22:20]

[연재] 세종, 조선 천년을 그리다 (29)

신현덕 / 언론인, 문학박사 | 입력 : 2015/06/12 [22:20]

훈민정음에 조선 독립의 꿈을 심었다.

 

세종은 훈민정음 서문에다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뜻을 집어넣었다. 훈민정음에다 조선 1000년의 꿈도 담았다. 조선백성들이 명심해야할 일들을 차곡차곡 챙겨 넣었다. 백성을 사랑하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기 것을 선뜻 내 놓은 세종의 아량과 배포와 혜안이 지금 사는 지도층에게는 경각심을, 백성들에게는 나라의 중요성을 새삼 깨우치게 한다.

 

가장 먼저 고려한 것이 조선의 완전 독립이었다. 조선은 중국의 유학을 함께 연구하고 믿으며 실천했다. 소중화(小中華)라고 부를 만큼 중국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발전이 되었다. 하지만 조선은 엄연한 독립국이기를 내놓고 소리치지는 않았지만 감추지도 않았다. 중국의 일부가 아니라 다른 문화와 언어를 가진 독립국임을 밝힌 것이었다.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은 문자를 만든 이유로 國之語音異乎中國 “나랏말미 듕귁에달아 문와로 서르디아니” 즉 나라 말과 음이 중국과 달라서 문자로서 서로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기서 중국과 문자와 말리 서로 다른 다르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우리글자의 탄생 필요성을 알렸다. 훈민정음 이전 이두나 구결 같은 표현들이 있었지만 한자와 한문을 모르면 사용이 불가능했다. 이두와 구결 등을 뛰어 넘는 쉬운 글자가 중국과 다른 땅에서 만들어졌다.

 

이뿐 아니다 세종은 여러 가지 일들을 하면서 그때마다 중국과 다름을 주장하고, 강조했다. 세종 29년(1447) 9월29일 동국정운을 만들었을 때도 신숙주는 서문에서 “대저 음이 다르고 같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다르고 같음이 있고, 사람이 다르고 같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방이 다르고 같음이 있나니, 대개 지세가 다름으로써 풍습과 기질이 다르며, 풍습과 기질이 다름으로써 호흡하는 것이 다르다.”며 “우리나라는 안팎 강산이 자작으로 한 구역이 되어 풍습과 기질이 이미 중국과 다르니, 호흡이 어찌 중국음과 서로 합치될 것이랴. 그러한즉, 말의 소리가 중국과 다른 까닭은 이치의 당연한 것”이라고 독자적임을 강조했다.

 

이는 조선이 중국과 확실히 다른 나라임을 구별하는 것이었다. 이에 앞서 세종은 즉위하고 나서 바로(1418년 8월14일) 왕권을 물려받은 일을 중국에 고하는 것을 신하들과 논의한다. 이 때 상왕인 태종은 신하들에게 “우리나라는 중국 영토 안에 들어있는 나라가 아니다.”라고 영토가 독립되었다는 것을 밝힌다. 그리고 “예로부터 반드시 주청한 연후에야 전위하지는 아니하였다.”고 주권도 독자적으로 행사했다고 말했다. 중국을 큰 나라로 섬기지만, 주권을 내 놓은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문자도 만들어 독립국으로서의 위상을 갖추어도 된다는 논리였다.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했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들면서 문화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독립국가 사상을 확실히 했고 그 뜻을 훈민정음에 담았다.

 

사관들도 이를 감추지 않았다. 사관들이 훈민정음을 만드는 것을 모르고는 있었지만 세종의 평소 속마음을 알고는 있었던 것 같다. 세종 25년 섣달 그믐날 글자인 훈민정음이 만들어졌다고 발표했을 때로 잠시 돌아가 보자. 이날 실록 원문에 실린 상친제언문28자 上親制諺文二十八字중에서 制(제)자의 의미가 엄청난다.

 

‘동아 백년옥편’에는 제(制)자가 ‘천자의 말’이라고 돼 있다. 김영욱은 저서 ‘한글’에서 제(制)는 황제만이 사용할 수 있는 글자라고 했다. 그는 “대왕의 한글 창제를 ‘제制’라고 표현한 것은 조선이 실질적으로 엄연한 독립국가임을 상징한다”고 했다.

 

制(제)자는 사관들이 쓴 글이지만 글에 임금의 생각이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임금이 늘 독립된 나라를 꿈꾸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사관들이 썼다고 쉽게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고 사관들이 유학을 버리고 사대를 무시한 것은 아닐 것이다. 유학은 조선학문의 기간이며 사대는 조선이 살아가기 위한 방편이었다. 눈치 빠르고 설자리를 찾는데 귀재인 사관들이 썼으니 엄청난 변화다.

실용사상을 천하에 공포하다

세종은 또 서문에서 28자를 새로 만드니 쉽게 익혀 날마다 쓰는데 편안케 하고자 한다고 했다. 28자의 마력은 신비롭고 환상적이다.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느끼는 훈민정음의 매력은 ‘엄지족’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학생들이 엄지 한 손가락으로 모든 문자를 다 주고 받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엄지족에게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때 휴대전화를 사용케 하면 그 시험 결과는 모두가 만점이다. 답을 쓰면서 주머니속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한 손가락으로 문제의 답을 다 주고 받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필자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하면서도 한 손가락으로 문자를 보낼 수 있다. 지금은 스마트폰이 대세여서 상황이 변했지만 여전히 우리 글자를 이용하기가 쉬운 것은 변함이 없다. 글자 자판이 10개 칸으로 해결된다. 자판 12개 중에서 2개는 기호이고 10칸으로 문자를 구성하면 된다.

 

훈민정음 글자가 얼마나 편리한 지는 우리와 중국의 휴대전화 사용을 비교하면 간단하게 이해가 된다. 우리말 ‘나’와 한자의 나를 뜻하는 ‘我(아)’를 친구에게 문자로 보낸다고 하자. 우리 글자는 소리 그대로 ‘나’를 쓰는 방법을 생각하면 된다. ‘나’라는 글자의 생김새만이 중요하다. 나는 ‘ㄴ+ㅏ’로 쓴다. 자판에서 ‘ㄴ’과 ‘ㅏ’를 누르고 전송하면 끝이다. 더 많다면 ‘ㄴ+l+아래아(ㆍ)’면 족하다. 여기서 우리는 ‘나’라는 글자의 뜻이 무엇인지를 몰라도 문자로 보내는 데는 지장이 전혀 없다. 발음을 몰라도 가능하다.

 

중국 한자로 눈을 돌려보자. ‘나’를 나타내는 한자가 우선 我(아)라고 알아야 한다. ‘나’를 나타내는 한자가 어떤 것인지를 모르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7만여 자가 되는 한자 중에서 나를 뜻하는 것은 我(아)라는 것을 알고 나서야 일이 진행된다. 그 다음은 발음을 알아야한다.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我(아)의 발음이 ‘워’라는 것을 알았다고 하자. 그 다음은 ‘워’를 로마자로 표기해야한다. 그러면 wo(워)가 된다. wo를 자판으로 치면 ‘워’에 해당하는 모든 한자가 창에 나타난다. 여기서 나를 뜻하는 我(아)를 선택해야한다. 그리고 전송한다.

 

한 글자를 보내는데 얼마나 복잡한가. 말로는 ‘워(나)’라고 했더라도 ‘나’를 의미하는 한자가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한자를 보고서도 뜻을 모르면 시작조차 할 수 없다. 그 다음 한자를 알아도 발음을 모르면 불가능하다. 발음을 알았더라도 영문자로 발음을 표기할 줄 알아야한다. 한 글자를 보내는데 동원된 수단 중에서 한 단계만 몰라도 문자 전송을 할 수가 없다. 자기나라 글자를 전송하면서 남의 문자를 알아야만 가능하다. 두 문자체계가 동원되어야만 하나의 의미를 전송할 수 있다. 표의문자이기에 그렇다.

 

그런데 같은 표음문자인 영어도 우리와 같지 않다. 우리말은 한 글자가 한 음절로 구성되어 있다. 자음 모음 자음의 세 가지 순서가 전부다. 영어는 말을 했더라도 음절과 쓰는 단어의 스펠이 다르다. 문자를 보아야만 순서대로 자모를 골라 전송해야 한다.

 

일본어는 어떤가? 우선 자모를 두 가지로 알아야한다. 가타가나 히라가나 두 가지를 다 알아야한다. 일본 자모를 이야기 하는 오십음도(五十音圖)에 표기된 글자만도 100개가 넘는다. 한 글자를 두 가지로 적는다. 훈민정음은 ‘가’는 가 오직 하나 뿐이다. 일본어는 ‘가’라고 하더라도 보통 말을 적는 ‘가(か)’와 외국어를 적는 ‘가(カ)’가 서로 다르니 혼란과 어려움이 크다. 나라 이름 가나를 적는다면 우리는 그저 ‘가나’이다. 일본은 반드시 ‘가(カ)’로 써야한다. ‘가(か)’로 쓰면 다른 뜻이 된다. 발음이 같아도 달리 써야하는 불편이 있다.

 

세종은 중국의 표의문자, 유럽과 일본의 표음문자가 가진 모든 불편을 모두 극복하고 뛰어 넘었다. 소리만 들리면 그대로 쓸 수 있게 만들었다. 초성중성종성 세 소리를 합하면 글자가 되게 했다. 이렇게 하여 편리성에서 가장 우수한 훈민정음이 되었다. 현재 한류가 세계를 뒤흔들 수 있는 것도 쉬운 한글 덕임일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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