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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동지였던 일본 연극계의 남과 여:세종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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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동지였던 일본 연극계의 남과 여

세계적 연출가 스즈키 씨와 사이토 여사 이야기

이청산 | 기사입력 2013/11/11 [00:09]

평생 동지였던 일본 연극계의 남과 여

세계적 연출가 스즈키 씨와 사이토 여사 이야기

이청산 | 입력 : 2013/11/11 [00:09]

지난달(2013년 10월), 서울 동숭동 아르코 예술극장 무대에 올려진 연극 <리어왕> 연출을 위해 방한했던 일본의 스즈키 다다시(74)씨는 세계적인 연출가이다.
그는 1976년 도쿄를 떠나 두메산골인 토야마현 토가에 활동의 거점을 마련하고 각종 공연을 무대에 올리며 국제적인 연극활동을 펼쳐왔다.

▲ 연극 <대머리 여가수>를 마친 뒤 인사하는 6개국 배우들. 모두 자국어로 연기를 했다. 왼쪽에서 두번째가 한국 배우 이성원 (2013년 8월, 토가)

사람들은 그곳을 스코틀랜드라고 부른다. 스즈키씨가 만든 극단의 이름 SCOT(Suzuki Company Of Toga의 약자)에서 나온 애칭이라고 한다.
해발 1천 미터에 겨울이면 폭설로 종종 고립되기도 하는 인구 6백명의 작은 마을 토가에는 현재 6개의 연극 극장이 있다. 인구 1백명에 한 개꼴이다.
여름 축제 기간이 되면 이 작은 마을은 일본 각지와 세계에서 모여든 연극 애호가와 연극관련 인사들로 붐빈다.
이번 축제에는 한국 배우 4명을 비롯해 15개국 연극 종사자 100여명이 공연과 훈련에 참여하고 있었다. 일주일간 축제를 찾은 관객 수가 4500명 정도였다고 한다.
광화문 문화 포럼 이종덕 회장과 최치림 부회장을 비롯한 회원 8명도 8월 23일부터 25일(2박3일)까지 토가국제연극축제(토가여름연극축제)에 다녀왔다.
이번 축제에선 어딘지 모르게 지난해 10월 세상을 떠난 스즈키씨의 평생 동지 사이토 이쿠코 여사에 대한 추모 분위기가 은근히 감돌았다.

스즈키의 성공과 관련해 그녀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고 한다. 그녀는 내내 독신이었으며 전 생애를 통해 헌신적으로 스즈키를 도왔다. 그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있지 않았겠는가 하는 것이 일반적 추측이자 호기심에 찬 기대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세인의 관심을 끌었을 법한 러브 스토리 같은 것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다.
그러나 서로간에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의 존경과 사랑이 없었다면 그러한 동지적 결합은 어렵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마침 우리 연출계의 원로이신 김의경 선생이 지난해 사이토 여사를 추모하는 글을 ‘<한국연극> 11월호’에 쓴 것이 있어 그 내용을 여기에 소개한다.

▲ 사이토 여사(왼쪽)와 스즈키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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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사이토 이쿠코(斎藤郁子), 일본연극계의 국제교류통
그녀의 정력적 일생을 추모한다.

일본의 대표적 연출가인 스즈키 다다시(鈴木忠志)의 평생의 연극동지였던 사이토 이쿠코 씨가 삼년 여의 암 투쟁 끝에 지난 10월 7일 타계하였다. 이미 재작년, 서울에서 열린 연극올림픽 때에 마지막 방한이 될지 모른다며 담담하게 말하는 그녀에게, 나는 외쳤었다. “의사 말은 믿지 마세요. 용기를 가지세요,” 라고.
일본 스즈키 극단의 창립동인의 한 사람으로, 1960년대 와세다 소극장 창립 이후, 그녀는 한평생을 스즈키의 연극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해 왔다.
내가 그녀와 처음 만난 것은 1986년. 아시안게임 공연예술축제에 스즈키극단을 초청하기 위해 극단의 사무실이 있는 다카다노바바(高田馬場) 근처의 어느 식당에서 만났다. 협의는 금시에 이루어졌다. 스즈키극단의 <트로이의 여인>이 우리들의 초청에 응하는 것으로 낙착되었다. 이 모두가, 일본의 연극 월간지 <新劇>의 편집장이었던 하다케야마 시게루(畠山繁)씨의 밀착 협조의 공이었다. 당시의 나는 일어가 서툴러, 우리는 주로 영어로 이야기하였다.
그녀와의 두 번째 협의는 88년 올림픽 공연예술축전을 위한 만남이었다. 스즈키 씨와는 이미 브라질의 마쿠나이마(Macunaima) 극단을 공동으로 초청하자는 약속이 되어있었다. 우리 모두는 남미-아시아의 비싼 항공료를 우려하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항공료를 반반씩 부담한다면? 이리하여 마쿠나이마 극단의 <시카 다 실바>의 극동공연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마지막 사이토 씨와의 과제는 베세토연극제의 공동창설 문제였다. 때마침 “서울정도(定都)6백주년”기념을 앞두고 나는 새로운 축제를 구상하고 있었다. 이른 바, 서울-베이징-도쿄를 잇는 동북아시아의 3각 연대(連帶)였다. 이 제의에 스즈키 씨는 즉각적인 찬성을 하였고, 사이토 씨는 스즈키 아이디어의 행동대장으로서 일본 문화청의 적극적인 지원을 이끌어내었다.
1995년 제1회 연극올림픽(Theatre Olympics)이 그리스의 델피(Delphi)에서 열렸다. 나는 스즈키 씨의 초청을 받아 그곳으로 날아갔다. 세계적인 연출가들이 모인 특별한 자리였다. 테오도로스 텔조풀로스(Theodoros Terzopoulos, 그리스)를 비롯하여 로버스 윌슨(Robert Wilson, 미국), 토니 해리슨(Tony Harrison, 영국), 유리 류비모프(Yuri Lyubimov, 러시아), 하이너 뮐러(Heiner Müller, 독일), 누리아 에스페르(Nuria Espert, 스페인), 안토네스 휘요(Antones Filho, 브라질), 그리고 스즈키 다다시(Suzuki Tadashi, 일본)의 쟁쟁한 면모들이다. 현대세계연극의 열쇠를 잡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일세(一世)의 연출가들이 이렇게 모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며, 여기에 사이토 씨의 숨은 힘은 평가할만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스즈키 씨는 한국의 참가를 권하였다. (나의 그리스 행은 ITI 세계총회(ITI World Congress & Theatre of Nations, 1997)를 위한 걸음이었다. 그리고 한국의 연극올림픽 참가는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2010년에야 이루어졌다.)
열아홉 번째의 베세토연극제는 올해에 서울에서 열렸다. 베세토의 창립멤버로서 한일연극교류에 각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사이토 이쿠코 씨, 그녀는 이번에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가 모두 염려하던 대로, 그녀는 결국 저세상으로 갔다. 세계연극계의 중요한 조직자였던 그녀는 창립멤버 중 제일 젊은 축이었음에도, 훌쩍 이 세상을 등졌다. 그녀에 대한 애도와 함께 그녀의 평생 동지 스즈키 씨의 슬픔도 위로해야 하겠다. 조용하고 자상하면서도 주도면밀한 성격의 그녀가 어떤 연극제를 구상하면서 우리를 떠났을까, 몹시도 궁금해진다.
깊이깊이, 그녀의 명복을 빌어 마지않는다.

주요 프로필: 이바라키 현 출신(1941), 와세다소극장 창립멤버(1966), 배우에서 제작자로 변신(1974), 도가무라에 극단의 거점을 삼다(1976), 재단법인 국제무대예술연구소 사무국장(1982), 그리스 델포이에서 연극올림픽 창설(1993), 베세토연극제 일본위원회 사무국장(1994), 도가예술공원에서 제1회 아시아 연출가 페스티벌(2012)
글/ 김의경 <한국연극』2012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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