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잃어버린 10년이니, 20년이니, 40년이니 하는 말에 공감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박정희 독재체제가 무너졌지만, 비정상적으로 등장한 전두환부터 오늘까지 그대로여서다 그 바람에 한국사회, 한국정치는 극과 극의 대결구도로 짜였다. 모든 과제들도 이 구도에서 밀려났다. 정권을 잡기위해, 시민을 살육한 세력의 슬픈 역사를 안고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아왔다. 이후 오늘에 오기까지 크고 작은 곳에서, 민주화가 지상명제였다. 아마 문재인정부의 적폐청산도 큰 줄기는 이런 비민주적 병폐들을 지우는 데서 비롯된 듯하다. 그렇기에 민주화의 행진은 빠르게, 또는 더디게 진행된 것이다. 그렇지만 박정희 경제모델의 한계는 극복하지 못했다. 박정희식 개발독재는 전두환 군부정권이 폭력적 구조조정으로 효과를 보면서 그 수명이 연장됐다. 개발독재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전두환 정권은 국제경제의 좋은 조건을 십분활용하고, 강력한 물가 억제로 고속성장을 이뤘다. 이 바람에 요즘 재계와 서민 중에 ‘차라리 박정희, 전두환때가 좋았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어이없고 어처구니없는 말이다. 박종철, 이한열등 민주열사들의 희생으로 6.29선언을 받아냈다. 하지만 민주화를 얻었지만 민주화의 길은 왜곡됐다.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의 3김씨가 독자적으로 세력화하며, 분열됐기 때문이다. 새로운 역사적 전환을 모색해야 할 우리사회는 박정희식 모델, 전두환식 모델을 대체할 새로운 모델을 찾지 못했다. 더구나 노태우가 이를 계승하면서 이 모델의 수명만 연장시켰다. 이 까닭에 양적성장을 이룬 한국경제를 새로운 단계로 도약시킬 기회와 전략이 실종된 것이다. 문민정부라는 김영삼 정권이 새로운 기회를 맞았으나 그 기대는 잠깐이었다. 금융실명제, 공직자재산등록 등을 단행했다. 취지는 좋았지만 근본적인 경제취약점을 개혁하지 않는 바람에 3저 호황에 취해 경제, 기업의 동력은 서서히 힘을 잃었다. 예컨대 금융개혁 작업은 해보지도 못한 채 금융자율화를 이용한 국제적인 투기자본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그 바람에 수십 년간 기업가와 근로자, 국민들이 일궈놓은 신흥공업국의 용(龍)이 하루아침에 천덕꾸러기가 됐다. 오히려 파산선고를 당했다. 결국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권까지 권력의 중심만 이동했지 박정희 모델에서 한 단계 더 발전시켜 선진 경제를 세울 전략이 일관되게 추진되지 못한 것이다. 지난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런 문제를 진단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전반기 경제정책(J노믹스) 성과에 대한 평가와 후반기 계획 및 목표를 밝혔다. 그러면서 탄탄하지 못한 우리 경제기반에 우려도 있었다. 그는 “그간 (문재인 정부 집권 후 ) 추세적 성장 둔화와 양극화 해결을 위해 혁신ㆍ포용ㆍ공정을 토대로 경제 패러다임 대전환에 노력을 집중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민간 분야 활력을 찾고자 노력했음에도 성장률이 국민에게 약속한 수준을 밑돈 점이 가장 아쉽다”고 시인했다. 그는 산업, 노동시장, 공공부문, 인구구조 및 기술 변화, 규제혁신과 사회적 자본 축적 등 5대 혁신과제를 언급했다. 이를 중심으로 구체적 실천 과제를 만들어 성장률을 올해 2%, 내년 2.3% 높이겠다고 공언했다. J노믹스는 집권 1년 차인 2017년 3.2% 성장률을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돌파했다. 청와대나 정부는 이를 성공적으로 출발했다고 자화자찬했다. 여권모두 경제기반구축에 성공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이후 대외 경제 여건 악화와 함께 기대만 부풀렸던 성장률은 급락했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제를 무리하게 밀어붙인 탓에 J노믹스의 상징인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의구심만 깊어졌다. 영세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처지를 외면한 채 추진한 ‘비정규직 축소’ 정책은 상생의 기반인 노·노 갈등까지 유발했다. 심지어 일부 학자중엔 문재인 정부가 반(反)기업, 친(親)노동정책으로 치우치는 바람에 경제부진과 침체를 부추 켰다고 의심하고 있다. 홍남기 경제팀의 향후 대내외 여건 악화에 대응하면서, 취약계층 보호를 위해 재정정책을 앞으로도 유지하겠다고 했다. 그는 “경기 대응을 위한 재정 역할을 고려하면 국가채무비율은 40%대 중반까지 갈 수밖에 없다. 충분히 감내 가능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KDI도 뒤이어 이에 동조했다. 경기 회복을 뒷받침하기 위해 확장적 재정정책과 완화적 통화 정책의 조합을 주문했다. KDI는 지금의 경제 상황에 대해 "경기 저점 근방에 우리 경제가 있다“ 했다. 이어 "올해 경기 부진이 상당 부분 대외요인에서 왔던 만큼 대외 부문이 갑자기 나빠지지 않는다면 향후 경기 부진이 심화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와 함께 “우리 경제가 제한적인 수준에서 아주 완만하게 개선될 것"으로 전망했다. 중기적으로는 국가채무비율이 점차 수렴할 수 있도록 재정수지 적자 폭을 단계적으로 축소해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관리재정수지 적자 확대와 국가채무비율 상승 추세가 지속된다면 재정 건전성 악화가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다. 따라서 지출 구조조정과 재정수입 확보를 통해 총수입과 총지출이 비슷한 속도로 증가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최근 들어 가파른 증가세를 보인 지출 분야에 대한 성과 평가를 해 총지출 전반을 효율화해야 한다고 했다. 만약 지출 구조조정만으로 중장기 재정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면 국민부담률 상승 등을 통한 총수입 확대가 필요함을 사회적으로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중장기 관점에서 사실상 '증세' 논의 필요성을 언급한 대목이다. 여기에 재정준칙 확립을 통해 중장기 재정 여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경기 대응에 따른 일시적 재정적자 확대를 어떻게 정상화할지 원칙과 실현 방안을 제시해 지속가능한 재정 운용에 대한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앞서 홍부총리가 밝힌 감내 가능한 수준여부는 정부가 아니라 시장이 판단한다. 지난 8월 중순 1.09%까지 떨어진 국고채 3년짜리 수익률이 최근 1.52%까지 급등한 것이 그 예다. 재정확대 속도가 과도하다는 시장의 우려가 반영된 것이다. 만의하나 적극적 재정정책이 성장률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가혹한 대가가 뒤따른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교수는 내년 경제 전망도 밝지 않은 이유는 미·중 무역갈 등등 대외적여견도 있지만 정부정책이 더 크다고 지적한다.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지우고 투자환경 악화를 초래한 게 정부 정책이라는 것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근로시간 단축, 예정된 화평법(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과 화관법(화학물질관리법) 도입 등으로 인해 기업 투자환경은 지난 2년간 악화됐다는 것이다. 홍 부총리가 밝힌 J노믹스 진단과 반성 그리고 향후 대응이 주목받는 이유다. 때문에 문재인정부 후반기에는 국민이 체감할 J노믹스의 정당성을 입증해야 한다. 내년 총선 이후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 등 정치 일정 등을 감안하면 경제팀의 재정운영과 주어진 정책과 책무는 꼼꼼하게 따지는게 매우 중요하다. <저작권자 ⓒ 세종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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