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는 카프카스에 처음 도착해 눈 덮인 높은 산을 보고 놀란다. 바닷가인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물론이거니와 모스크바를 주심으로 한 중앙러시아는 대평원 지역이어서 높은 산을 볼 수 없디. 톨스토이의 집이 있는 모스크바 아래 툴라 지방에도 산다운 산이 없다. 그런데 5천 미터가 넘는 봉우리들이 있는 카프카스 산맥의 광경은 그것이 꿈인지 환각인지 하고 깜짝 놀랄 정도였다. 톨스토이는 그 아름답고 장엄한 광경에 경탄했고 기쁨을 느꼈다. 톨스토이는 카프카스 도착 이듬해인 1852년 1월, 하사관 채용시험에 합격해 포병하사관이 되었으나 복장은 귀족출신 장교 제복을 입었다. 2월에는 산민(山民) 토벌작전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는 이곳에서 모스크바에서부터 쓰기 시작한 『유년시절』을 완성해 네크라소프가 운영하던 페테르부르크의 문학잡지 <현대인>에 보냈다. 원고를 읽은 네크라소프로부터 ‘당신에게는 충부한 자질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곧 잡지에 발표하겠다’는 답장을 받았다. 이에 용기를 얻은 톨스토이는 『지주의 아침」 『카자크 사람들』 『소년 시절』등을 잇달아 쓰기 시작한다. 처음 하사관으로 군에 들어갔던 그는 그후 시험을 쳐 소위로 승진, 장교가 된다. 톨스토이가 카프카스에 간 첫 해인 1851년 12월에, 티플리스(*현재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 티플리스는 오스만 제국 시절의 이름)에서 발행되는 <카프카스 신문>에 용맹한 적장으로 러시아군 진영에도 잘 알려진 하지 무라트가 러시아에 투항했다는 기사가 대서특필됐다. 톨스토이는 이때부터 하지 무라트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하지 무라트는 러시아군에 투항했으나 이슬람 진영에 남겨둔 가족을 구하기 위해 탈주했다가 추적해 온 러시아군에 의해 이듬해 봄 사살 당해 생을 마감한다. 이 용감한 전사의 이야기를 톨스토이는 소설화 하고 싶었다. 거의 반세기가 지나서 집필에 들어가 마지막 세상 떠날 때까지 이 소설을 손에 쥐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 『하지 무라트』는 톨스토이의 젊은 날부터 평생을 이어 온 카프카스와의 깊은 인연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톨스토이가 카프카스에서 군 생활을 하던 중인 1853년 10월, 러시아와 터키 사이에 크림 전쟁이 발발했다. 다음해인 1854년 3월에는 영국과 프랑스가 러시아에 대해 선전포고를 했다. 러시아의 남하 정책을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계속) <저작권자 ⓒ 세종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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