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 샤밀(1797~1869)은 인터넷 검색을 하면 금방 누군지 알 수 있는 역사적 인물이다. 그는 19세기 중엽 북 카프카스의 다게스탄과 체첸을 기반으로 한 이슬람 국가의 3대 이맘으로 러시아의 침략에 대항해 수 십년간 싸운 이슬람 지도자였다. 러시아는 흑해에 접한 전략요충지인 카프카스 지역을 오랫동안 노렸다. 마침내 19세기에 들어와 알렉산드르 1세는 이 지역을 통치하고 있던 페르시아를 몰아내고 1813년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다게스탄을 합병했다. 그러나 북 카프카스 지역에는 러시아의 통치권이 완전히 미치지 못했다. 그러던 중 1829년 북카프카스 지역에 샤밀의 동료였던 가지 모하메드가 이슬람국(Caucasian Imamate)을 세우고 샤밀을 부사령관에 임명했다. 가지는 카자크(코사크) 라인의 러시아군 초소와 카스피해 해안의 러시아군 수비대를 공격했다. 카자크 라인이란 북 카프카스와 그 위쪽의 러시아 사이에 만들어진 완충지대를 말한다. 그러사는 그곳에 호전적인 카자크족 부대를 배치했다. 그래서 카자크 라인이라고 불렀으며 이 완충지대는 러시아군이 북 카프카스의 부족들을 통제하고 필요시 작전을 펼칠 수 있는 거점 역할을 했다. 이슬람국이 세력을 떨치자 러시아는 1832년 이맘 가지의 본거지에 대한 총공격을 개시했다. 이 전투에서 가지가 사망하고 함자 베크가 2대 이맘이 됐으나 1834년 11월 측근에게 암살됐다. 그 닷새 후 샤밀이 3대 이맘에 올라 1859년 러시아군에 생포될 때까지 약 25년간 대 러시아 저항전을 이끌었다. 그러다가 1851년 샤밀이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선포하면서 하지 무라트와 샤밀 사이에 불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소설 『하지 무라트』에서 톨스토이는 하지 무라트가 왜 샤밀에 쫓겨 러시아군에 투항하게 됐는지에 대해 설명은 길게 했지만, 구체성은 좀 떨어진다. 하지 무라트가 투항한 시기는 샤밀이 아들을 후계자로 선포한 그해 말인데, 소설 속에 후계자 문제와 관련한 이야기는 없다.(계속) <저작권자 ⓒ 세종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