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사전적 의미는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라고 되어있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산다고 많은 이들이 믿고 있고 그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행복의 궁극적 실체는 개인의 처지에 따라 다 다른 형태로 보인다. 행복에 대한 사색을 많이 한 사람 중 하나가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1828~1910)다. 그는 “인간이 행복에 대한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정당한 것이지만, 그것을 이기적으로 만족시키려고 들면 결코 채워질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남을 위해 살거나 남의 행복을 원할 때 자신도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고 그의 『인생론』 등에서 설파하고 있다. 행복에 대한 이야기는 톨스토이의 소설 속에서도 자주 눈에 띈다. 『전쟁과 평화』에서는 갑자기 러시아 최고의 부호가 된 주인공 피에르가 ”행복이란 내가 갖고 있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장면이 있다. “베푸는 것이 행복이 아닐까”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전쟁과 평화』 속에는 ”행복이란 사랑과 자기 희생으로 나 스스로 행복해지는 것“이란 발콘스키 공작의 딸 마리야의 독백도 등장한다. 마리야는 자기가 좋아하는 미남 아나톨리 공작을 자기집에 들어와 아버지의 심부름을 하면서 살고 있는 프랑스 여인 아멜리도 내심 좋아하는 것을 알고 아멜리를 위해 자기가 뒤로 물러서기로 마음 먹는다. 마리야는 이렇게 말한다. “그 불쌍한 아멜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줘야 해. 아멜리는 그토록 열심히 사랑하고 있으니까.” 마리야는 그것이 스스로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얼마나 거룩한 마음씨인가. 그러나 그같은 상황이 현실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는 결국 ‘이타적 사랑과 희생이 행복’이라는 톨스토이의 행복관의 표현이다. 소설 속의 아나톨리는 이름난 바람둥이였다. 그뒤 아나톨리는 소설의 여주인공 나타샤를 유혹하려다 실패한 후 나폴레옹 전쟁에 나갔다가 다리가 절단되는 중상을 입고 사망한다.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는 톨스토이의 소설가로서의 뛰어난 능력을 여기서도 엿볼 수 있다. 톨스토이가 초급장교 시절 카프카스에서의 군생활 경험을 토대로 쓴 『카자크 사람들』을 보면 ”행복한 인간, 그것은 또 올바른 인간이기도 한 것이다“란 대목이 나온다. 다시 말해 ‘올바른 인간이 행복한 인간’이라는 의미다. 이것도 새겨들을 만한 이야기다. 한편, 톨스토이와 더불어 러시아 문학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도스토예스키(1821~1881)는 늘 빚에 쪼들리는 생활을 한 탓인지 언제나 가진 자였던 톨스토이처럼 ‘베푸는 것이 행복’이라는 류의 이야기는 그의 저작에서 찾아보기가 어렵다. 도스토옙스키의 행복에 대한 생각은 소박했다. 그는 유럽 체류 중, 1869년 완성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보내 준 총각 평론가 스트라호프에게 “빨리 결혼을 하라”며 이런 편지를 써보냈다. ”자네는 왜 결혼을 하지 않았나, 왜 아기가 없단 말인가. 자네에게 맹세컨대, 인생의 행복 중 4분의 3이 거기에 있다네. 나머지 다른 것들엔 겨우 4분의 1이 있을 뿐이지.“ 40대 후반 늘그막에 자녀를 얻은 도스토옙스키에게 아이들은 그의 최대의 행복이었다. 전혀 다른 경제적 환경 속에서 산 두 사람은 이처럼 행복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달랐다. 베푸는 것도 행복이고 사랑하는 자식을 갖게 된 것도 행복이다. 행복은 결국 각자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삶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크건 작건 죽을 때까지 행복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죽음으로 인한 행복의 상실이 아쉽고 서운하고 두려운 것이다. 그 역시 인생의 자연스런 모습이다. <저작권자 ⓒ 세종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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