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생명은 유한하므로 모두가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날 것을 안다. 특히 노년에 들어서면 누구나 문득 문득 자신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희망하는 생의 최후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현생에서의 모든 기운을 소진하고 조용히 하늘로 돌아가는 것일 게다. 그렇게 생명을 다하면 ‘천수를 누렸다’고 한다. 한창 때인 20대 후반의 청년이 갑자기 사형 선고를 받고 총살대 앞에 섰을 때 그는 어떤 생각을 할까? 혹시 그가 기독교인이라면, 이제 주의 품으로 돌아가니 기쁜 날이라고 생각할까? 또, 만약에 사형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다시 인생을 살게 되면 그는 새로 받은 생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질까? 그런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문학인이 바로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1821~1881)가 아닐까 한다. 공병장교 출신인 도스토옙스키는 24세 때인 1845년 첫 작품 『가난한 사람들』로 문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는 1849년, 한 독서모임 사건에 휘말려 청천벽력 같은 일을 당한다. 이 모임에서 차르체제를 비판한 비평가 벨린스키의 편지를 읽은 죄로 국사범으로 체포돼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이다. 그의 나이 28세 때였다. 그해 12월 스무 명이 넘는 독서모임 참석자들이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사형수가 되어 총살대 앞에 서게 되었다. 동료들은 서로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눴다. 이제 2~3분 뒤면 처형이 시작될 상황이었다. “얼마나 살고 싶었던지, 오 주여, 생명이 얼마나 귀하게 여겨지던지, 얼마든지 선하고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을텐데!” 도스토옙스키는 훗날 그의 두 번째 부인 안나에게 그날의 심정을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총살형이 집행 되기 직전, 갑자기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황제의 전령이 나타났다. 전령은 엄숙한 목소리로 ‘시베리아 유형’으로의 감형을 알리는 황제의 칙서를 낭독한다. 목숨을 건진 도스토옙스키는 감옥으로 다시 돌아와 독방을 왔다 갔다 하면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모진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 시베리아 유형지로 가게 됨에도 “내게 선사 된 생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고 후일 술회했다. 그는 살아있음에 감사했고 그날 이후 ‘생은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삶에 대한 새로운 의지를 다진다. 도스토옙스키는 수용소에서 장차 출소 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위해서는 신체의 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 힘든 노동에도 정을 붙이려고 노력했다. 노역을 나가 처음에는 벽돌을 25kg 밖에 지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거의 두 배인 48kg까지 운반하게 됐다고 기뻐했다. 수용소에서 도스토옙스키는 장차 소설의 소재가 될 온갖 유형의 범죄자들의 행태와 그들의 심리상태, 수용소의 환경, 주변의 모습 등 모든 것들을 세심하게 관찰했다. 수용소에서는 기록이 금지돼 있었으므로 머릿속에 차곡차곡 저장했다. 혹독한 고난 속에서도 그는 후일 위대한 작가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죽음의 유태인 수용소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저명한 유태계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 박사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사느냐’하는 것보다 ‘무엇 때문에 사느냐’하는 대답이 문제라고 했다. 도스토옙스키에게는 ‘무엇 때문에’가 가슴 속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4년의 형기를 마친 후 건강한 몸으로 출소할 수 있었다. 유형 생활의 수기인 '죽음의 집의 기록'은 물론, 그의 4대 명작이라 불리는 '죄와 벌',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은 모두 범죄소설이다. 그의 대작들은 대부분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그 싹이 잉태됐다고 할 수 있다. 그는 30대의 대부분을 시베리아에서 보냈다. 그러나 시련은 시베리아에서 끝나지 않았다. 빚의 형벌도 있었다. 4년간의 유형생활 후 시베리아에서 계속해서 5년여 강제 군복무까지 마치고 10년 만에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지 몇 년 후, 함께 잡지 사업을 하던 형이 갑자기 죽었다. 그 때문에 형이 남긴 큰 빚을 그가 떠안게 되었다. 도스토옙스키는 그 빚을 죽기 직전까지 끊임없이 갚아야 했다. 첫 부인 마리야와의 사별, 본인의 지병인 간질, 폐기종 등의 불행과 질환도 계속됐다. 그러나 그는 지치지 않고 작품을 썼고 마침내 러시아 뿐 아니라 세계 최고 작가의 반열에 우뚝 서게 되었다. 필자는 도스토옙스키의 흔적을 찾아 떠난 기행문을 골격으로 한 그의 인생 이야기를 2020년과 올해 2021년에 걸쳐 두 권의 책으로 냈다. 러시아 문학기행 시리즈 1권의 제목은 ‘도스토옙스키 두 번 죽다’이며 2권의 제목은 ‘도스토옙스키 죽음의 집에서 살아나다’이다. 필자는 도스토옙스키의 출생지에서부터 그가 유형살이와 강제 군복무하고 첫 결혼을 한 시베리아 등 그의 흔적이 있는 7곳의 박물관을 수년간에 걸쳐 틈틈이 시간을 내어 찾아 보았다. 러시아 내에는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다로보예, 스타라야루사, 시베리아의 옴스크, 노보쿠즈네츠크 등 6곳이며 러시아 밖으로는 카자흐스탄의 세메이 1곳이다. 2021년은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였다. 1821년에 태어난 그는 1881년 만 59세 때 폐출혈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도스토옙스키는 인생 그 자체가 흥미진진한 드라마다. 그가 겪은 시련과 고난은 어쩌면 위대한 문호를 만들기 위해 신이 그에게 준 선물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나 감당할 수 없는 선물이다. 우리는 왜 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도스토옙스키란 거울에 비춰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여러분,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한 2022년 새해 맞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세종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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