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은 지난 2월 24일 러시아의 기습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다. 반면 118년 전인 1904년에 발발한 러-일 전쟁은 일본의 러시아에 대한 기습 공격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일반적 관측은 일본이 러시아를 감히 선제 공격하지 못하리라는 것이었고, 전쟁이 나도 일본은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았다.일본의 국력은 러시아의 10분의 1정도로 평가되었다. 군사력 역시 상대가 안 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일본은 전쟁에서 이겼다. 승전국이 된 일본은 러시아가 차지하고 있던 우리나라 옆의 중국 요동반도를 빼앗고 천혜의 요새 여순항을 차지했을 뿐 아니라 사할린의 절반을 점령했고, 쿠릴 열도도 수중에 넣었다.러시아는 여순항을 러시아 말로 포르트 아르투르(Port Artur)라고 불렀다. 영어로는 포트 아서(Port Arthur)라고 했다.
러일전쟁은 1년 넘게 계속됐다. 개전 초기 여순항에는 러시아 태평양 함대의 전함들이 대부분 집결해 있었다. 여순항의 봉쇄와 탈취는 전쟁의 승패를 가늠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목표였다.
일본은 항구 인근 203고지 공방전에서 수 만명의 병사를 희생시키면서 마침내 여순항을 정령하기에 이른다. 이어 이듬해인 1905년 쓰시마 해협에서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궤멸시킴으로써 러일전쟁은 일본의 승리로 끝난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전쟁에 반대해 온 사람이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여순항이 일본군에 점령되었다는 소식에는 이렇게 말했다. “포르트 아르투르(뤼순항)이 일본군에 점령됐다는 소식은 나를 슬프게 했다. 슬프다. 이것은 애국심이다. 나는 이러한 애국심 안에서 성장했으며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마치 내 자신의 이기주의, 가족 이기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듯이, 그리고 귀족 이기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듯이 애국심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톨스토이의 이 말은 당시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의 패배감과 낭패감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러시아와의 전쟁을 치밀하게 준비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완공되면 전쟁에 이기기 힘들 것으로 보고 완공 한해 전인 1904년에 전쟁을 일으켰다. 전쟁은 치밀한 준비와 정보, 그리고 동맹국과의 관계 속에서, 또 전쟁을 치르는 목적이 분명하고 국민 전반의 지지를 받을 때 승리 할 수 있다. 일본은 당시 그러한 제반 전제들을 거의 충족하고 있었다.
반면에 러시아는 일본에 대해 자만했다. 전쟁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 약했다. 러시아의 차르 니콜라이 2세는 러시아가 먼저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한 일본이 먼저 러시아를 공격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같은 자만심이 전쟁의 패배를 불러 온 근본 원인이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의 경우도 러시아는 3일이면 수도 키이우를 점령해 항복을 받아낼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고 한다. 과거 2008년 카프카스 지역의 조지아와의 전쟁 때 러시아는 4일만에 조지아의 항복을 받아낸 적이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조지아가 아니었다. 조지아의 인구는 460만명에 불과한데 비해 우크라이나는 4400만명으로 10배 가량된다. 면적도 10배나 넓다. 러시아로부터 기습 공격을 당한 우크라이나는 한 달 반을 넘기면서 항전을 계속하고 있으며, 미리 계획하고 준비해 침략한 러시아군보다 훨씬 잘 싸우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수도 키이우 주변을 포위했던 러시아군은 졸전을 계속하다가 우크라이나군의 저항에 밀려 얼마전 국경 밖으로 퇴각했다.
100여년 전 러시아가 일본에 자만했다가 패전의 쓰라림을 맛 본 것처럼 이번에는 우크라이나를 너무 얕잡아 봤던 것은 아니었을까. 러시아의 눈에 우크라이나는 도와줄 동맹도 없고, 핵무기도 없고, 내부는 친서방파, 친러파로 갈라져 있고, 코미디언 출신 대통령에게는 국민적 신뢰도 별로 없어 보였다. 그래서 러시아군이 밀고 들어가면 상당수의 우크라이나인들이 내부에서 호응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쟁이 나자 국민들은 똘똘 뭉쳤고, 젤렌스키 대통령은 해외 피신 권유를 거절하고 키이우에 남아 전쟁을 지휘하며 서방측의 무기 지원과 도움을 요청하는 각종 외교 활동을 활발히 벌여 세계적인 인물이 됐다. 우크라이나 군도 생각보다 훈련이 잘 되어 있었으며, 전쟁이 나자 남녀 지원병이 넘쳐났다.
우크라이나의 모습을 본 세계인들은 중국 등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는 모두 우크라이나 편이 되어 우크라이나를 응원하고 격려하고 우크라이나를 도울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 서방국가들은 동맹관계가 아니어서 병력파견은 자제하고 있지만 무기를 비롯, 다방면으로 우크라를 돕고 있다. 우크라는 홀로 싸우고 있지만 외롭지는 않다.
오히려 고립되고 있는 쪽은 러시아다. 러시아의 전쟁 계획은 치밀하지 못했던 것 같다. 키이우 점령에 실패해 퇴각한 것이 그 증거다. 키이우 점령에 실패하자 동부 돈바스 지역과 마리우폴 등 아조프 해안 도시들의 점령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이 전쟁에 국민적 지지를 못받고 있다. 전쟁 한다는 말도 못하도록 하고 특수군사작전이라고 하고 있다. 반전 시위는 철저히 막고 있다. 동족이나 다름없는 같은 슬라브인인 우크라이나인을 상대로 한 전쟁을 정상적인 러시아인이라면 찬성할 리가 없다. 최근 러시아군에 의한 우크라이나 민간인 학살의 참상이 드러나면서 전세계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러시아는 안팎으로 명분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으며, 거대한 글로벌 경제제재에 직면해 있다. 전쟁이 끝나도 러시아의 경제 회복에는 매우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석유 천연가스 등 자원을 이제까지처럼 수출하기도 어렵게 되었다. 서방국들이 러시아의 자원 무기화에 경계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전쟁으로 유럽국가들이 무장을 강화하도록 만들었고, 러시아는 형편없는 전쟁수행능력을 만방에 노출시킴으로써 아무도 군사력 세계 2위의 러시아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와 아조프해 연안 동남부 일부 지역의 점령을 기정사실화해 마치 전쟁 목표를 달성한 것으로 선전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군이 강력한 반격에 나설 경우 그것마저 쉽지 않을 수 있다.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는 많은 것을 잃게 되었다. 향후 특수군사작전을 성공리에 마쳤다고 자국내에서는 선전을 할지 몰라도 러시아는 전 세계의 신뢰와 명예를 모조리 잃고 말았다. 푸틴 장기독재가 낳은 비극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저작권자 ⓒ 세종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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