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금 군사력 세계 2위인 러시아와 석달 째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인의 항전의지에 세계인들은 많은 격려를 보내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군사력에서 세계 22위 또는 25위로 알려져있다. 대학생과 초등학생 싸움이 되어 우크라이나가 개전 후 일주일을 못 버틸 것이라고 예상했던 세계인들은 이번 전쟁으로 우크라이나인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런 저력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필자도 궁금했다. 민족적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같은 슬라브 계열이므로 민족이 다르다고는 할 수 없다. 종교도 동방정교회로 같다. 그러나 5~6백년, 혹은 그 이전부터 우크라이나인은 코사크의 전통을 중요한 정체성으로 여기면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엄밀히 말해 코사크는 민족 개념은 아니다. 코사크는 슬라브인을 주축으로 한 자유민들의 무장 집단에 붙여진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크라이나의 드니프르 강을 중심으로 한 광대한 초원지대에서 나름의 자유와 자치권을 누리며 살았다. 코사크는 외부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무장집단화 되었다. 말 잘 타고 싸움 잘하는 기마군사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코사크 사회는 근본적으로 평등사회였다. 러시아와 같은 농노제가 없었다. 신분제도가 없었다는 얘기다. 코사크 정신의 전통은 자유, 평등, 상무정신으로 요약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코사크라고 부르지만 이는 영어이며, 러시아어로는 카자크, 우크라이나어로는 코자키다.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의 주류 민족인 카자흐족과는 이름만 비슷할 뿐 완전히 다르다. 카자흐 족은 튀르크 민족의 일파다. 제정러시아는 호전적이고 용맹한 코사크를 수백년 동안 변방 경비와 시베리아 개척에 이용했다. 황실 근위대 임무도 코사크에 맡겼다
2. 조선 말기 러일전쟁 전에 우리나라 평안도까지 러시아의 코사크 기병대가 들어온 적이 있었다. 조선 땅에 들어온 코사크는 곳곳에서 행패를 부렸다. 춘원 이광수(1892~1950)는 그가 어릴 때 고향 평북 정주에서 본 러시아 병정의 행패를 훗날 그의 책 <나의 고백>(1948)에 이렇게 기록했다.
”내가 열 두 살 되던 1903년, 이해 겨울에 아라사(러시아) 병정이 정주에 들어왔다. 그들은 들어오는 길로 약탈과 겁간을 자행하여서 성중에 살던 백성들은 늙은이를 몇 남기고는 다 피난을 갔다. 젊은 여자들은 모두 남복을 입었다. 이 때에 어린 나는 우리 민족이 약하고 못난 것을 통분하고 아라사 사람을 향해 이를 갈았다. ‘저놈들을!’하고 나는 조그마한 주먹을 부르르 쥐었다.“
그 러시아 병정들이 코사크 기병이었음은 다른 자료들이 말해주고 있다. 이광수는 그 후 일본 유학시절 톨스토이에 심취하면서 톨스토이주의자가 된 뒤로는 러시아를 사랑하는 입장이 되었으나 어린 시절의 그런 분한 경험을 기록으로 남겼다.
3. 우크라이나인은 코사크의 후예인 것을 자랑으로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폴란드와 러시아의 지배를 받다가 1991년 구 소련에서 독립해 비로소 제대로 된 독립국가를 세웠다. 우크라이나의 국가(國歌)를 보면 ”우리는 코사크의 피를 이어받은 형제“라는 대목이 나온다. 코사크의 후예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한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영광은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제목의 우크라이나 국가의 가사는 이렇다.
우크라이나의 영광과 자유는 사라지지 않으리라 형제들이여, 운명은 그대들에게 미소짓고 있도다. 우리의 적들은 아침 태양의 이슬처럼 사라지리라. 그리고 우리는 형제의 땅에 자유롭게 살게 되리라. 우리의 자유를 위하여 우리의 몸과 영혼을 희생하자 그리고 우리는 코사크의 피를 이어 받은 형제임을 보여주리라.
우크라이나인들은 지금 젤렌스키 대통령을 중심으로 ‘적들을 아침 태양의 이슬처럼 사라지도록’하기 위하여, 자유를 위하여, 목숨을 건 방어전쟁을 펼치고 있다. 이 국가의 가사를 보면 우크라이나인들이 예상했던 이상으로 잘 싸우고 있는 정신의 근원을 짐작할 수 있다.
4. 전쟁이 길어지면서 전쟁 양상은 러시아와 미국을 중심으로 한 나토국가들과의 대결로 본격 변화하고 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이 전쟁에서 지도록 내버려 둘 수가 없게 되었다. 러시아가 승리할 경우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지위가 흔들리게 될 뿐 아니라, 전세계의 평화와 질서가 도미노처럼 깨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혼돈과 위기 상황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은 전쟁 두 달을 지내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공급을 노골적으로 늘리고 있다. 러시아에 의해 미국인 사상자가 발생할 경우 참전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러시아도 이 전쟁에 푸틴의 정치적 생명이 달려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자국내에서 승리를 선언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려고 할 것이다. 동부 돈바스 지역과 아조프해의 주요 도시 마리우폴에 총력을 집중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이번 전쟁으로 중립적 입장이었던,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을 서두르게 했고, 독일 프랑스 폴란드 등 유럽국가들이 군비를 강화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유럽국가들로 하여금 천연가스, 석유 등 에너지의 러시아 의존도를 전면 재검토케 했다. 전쟁을 통해 러시아 군사력의 취약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자신들은 당연히 부인하겠지만 길게 보면 매우 손해보는 싸움을 시작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도 촉진될 가능성이 있다. 개전 초기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어려울 것’이라고 대외적으로 발표했다. 전쟁을 속히 끝내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전으로 가고 있는 지금은 생각이 다를 것이라고 본다. 나토의 우크라이나와 스웨덴, 핀란드에 대한 조속한 가입 승인이 전쟁을 빨리 끝낼 수도 있지 않을까.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러시아 국민들이 지금은 보도 통제 때문에 전쟁의 진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전쟁의 참혹한 진상을 안다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저지와 친 나치세력의 척결’을 내세운 푸틴 정권의 이 무모하고 불법적인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을 결코 지지하기 않을 것이다.
한반도도 한 번 돌아보자,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포기함으로써 벌어진 이 전쟁으로 인해 북한은 핵무기를 더 강하게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 할 것이 분명해졌다. 협박의 수위도 높일 것이다. 한국은 한미동맹에 의지해 이대로만 갈 것인가? <저작권자 ⓒ 세종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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