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샘이 깊은 물’
김민철 기자 | 입력 : 2015/03/26 [23:17]
안중근은 영웅이다. 일본 형리들조차도 존경한 휴머니스트이다. ‘진정한 인격자’인 안중근은 충무공에 이어 적에게 존경받는 '무인'이다. 그를 독립운동가로 보는가 하면 무장투쟁론자로 보기도 한다.
뮤지컬 ‘영웅’은 안중근 의거 100주년 기념으로 올린 작품이다. 국내 무대를 평정하고 2011년에는 해외에 진출해 LA와 NY에서도 공연을 한 작품이다.
‘수작’ 뮤지컬 ‘영웅’에서 문제가 된 것은 안중근의 적수로 이토 히로부미를 그려낸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이것이 한국인들에게 거북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연출자가 이토 히로부미에 의미를 부여한 것은 일면 이해할 만한 요소가 있다.
뮤지컬 제작사 대표는 "안중근을 단순한 테러리스트가 아닌 인간의 본질적인 면을 포착할 줄 아는 묵직한 인물로 그려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려면 안중근과 이토를 같은 시대를 산 영웅으로 설정해야 했다"고 밝혔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독도도, 위안부할머니도 눈앞에 어른거린다. 픽션의 극적인 효과와 흥행을 위해 ‘국가적 요소’를 바꾸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를 묻게 된다.
일본인에게 우리가 가해자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담론도 허용될 수 있는가도 물어야 할 과제다.
임진왜란을 평정한 이순신 장군이 일본의 가해자가 될 수 있는가를 묻는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보편적 정서는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왜냐면 일본이 많은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많은 한국인들은 가만히 있는 나라를 약하게 보인다는 이유 때문에 침공하고 그 대가를 치른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복합적이고 중층적으로 이해하자면 일본도 어떤 이유가 있어 조선인을 괴롭히고 한반도를 병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침략자에게도 이유는 있다.
일본에게 안중근이 가해자로 보인다는 것은 그네들의 역사적 겸손성이 결여돼 있는 부분이다.
안중근 의사의 행위는 이순신 장군이 13전13승의 대첩을 거두며 왜군을 수장시켰던 것처럼 호탕한 쾌거이다.
정당방위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일에 연민이나 예술적 감수성을 들이대 변질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제국주의 본질을 이해한다면 이토 히로부미는 동정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특히 일제 36년사의 치욕이 지금도 여전히 살아 여러 현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히로부미에게 우리는 ‘피해자’라는 이름을 줄 수 없다.
민족적 감정의 문제야 말로 정서적으로 접근하기 어렵다.
일본과의 문제에서 짐짓 자유로워지려는 몸짓을 많이 봤다. 하지만 세월이 아직 그것을 자연스럽게 여길 만큼 무르익지 않았다.
가수 조영남 친일 발언도, 김완섭의 김구는 살인마라는 망언도, 일부 뉴라이트 학자들의 식민지근대화 이론도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용납되기 어렵다.
일본 관광객들이 명동을 누비고 일부 몰지각한 일본 관광객이 명동에서 일장기를 날려도 한국인은 분노하지 않는다.
국익과 실리를 알고 진정한 민족적 자존심이 뭔지 알기 때문이다.하지만 위에 말한 ‘친일하는 것들’에 대한 반감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일부 문화예술인들이 친일이라는 고깔 때문에 뜻을 펴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청연’이라는 영화는 친일이라는 굴레를 못 벗어나 훌륭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흥행은 부진했다.오다기리 조와 한국을 대표하는 장동건이 나온 대작 ‘마이웨이’도 친일논쟁에 침몰하고 말았다.
만화가 윤서인씨도 친일성 때문에 좋은 그림에도 불구하고 가치가 깎이는 아티스트이다. 윤서인씨는 상당히 도발적으로 일본의 장점을 드러낸다. 이 작가의 그림은 영화보다 , 글보다 ,논문보다 더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신라호텔 뷔페에서 한복은 출입 못하고 기모노는 출입시켰다는 씁쓸한 현실과 이 작가의 세계관은 가끔 오버랩 된다.
그 호텔에선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반대할 때 일본군 창립대회를 열었다고 한다. 깊이 사과하고 반성했지만 믿기는 사실 어렵다.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느냐는 말이 있다. 누군가에는 민족 감정이 똥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것 같다.
일부 친일 지식인들은 한국인의 문제는 일본을 주관화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들의 사명은 일본을 한국인에게 객관화 시켜 보여주려는 것에 있는 것 같다.
일본을 객관화하려는 자들의 뇌리에는 일본은 '대국'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은 듯하다. 하지만 그 '대국'은 지금 상당히 힘들다.
친일 예술가나 지식인들의 공통적인 관념은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한국보다 우월한 일본의 진면목을 항상 의식한다는 것이다.
그 잠재 의식이 한국인들에게 친일이라는 ‘바이러스’를 퍼트리고 있는 연원이다. 이들은 필요하면 ‘무의식’까지 두레박을 내려 물을 기른다.
친일은 폭의 문제가 아니라 깊이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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