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조선인민공화국의 까마득한 손위 형이다. 40배의 경제력 뿐 아니라 과학과 기술, 정치와 사회, 문화 등 전반적으로 선진국 문턱까지 성장한 형과 세계의 하위인 160위 권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미숙한 아우와의 관계다. 국가 전체를 시뮬레이션으로 계량한다면 북은 50년도 더 뒤져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남북은 팽팽한 긴장관계를 벗지 못하고 있으며, 남쪽은 북쪽의 공격에 계속 수세였다. 국가와 국민의 안위에까지 양보의 미덕만을 구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며, 강경일변도 노선도 효험이 없다. 이런 현실은 형의 위세와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며, 그악스런 아우를 다루는 능력의 빈곤으로 치부할 수밖에 없다.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도, 이명박 정권의 강경노선도 강.온 한쪽에 치우쳐 후속 정권이 잇는 성공적인 기초를 다지지 못하고 말았다. 지뢰 폭발을 계기로 열린 남측의 김관진-홍용표, 북측의 황병서-김양건 팀 간의 타협은 외교 용어를 사용한 북의 사과와 남의 확성기 방송 중단으로 쌍방의 요구가 합의되어 남북관계에서 봉합의 획을 또 하나 그었다. 합의 사항 중 부수적으로 남북대화를 진행시키고,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하기로 한 것은 좋은 조짐이다. 대화 자체를 갖기도 얼마나 어려웠던가. 그러나 모처럼 열린 남북대좌에서, 더구나 양측의 고위 실세들이 나흘 밤.낮 78시간이나 벌인 긴 접촉에서 남북관계의 틀을 새로 짜는 획기적인 계기를 잡지 못한 점은 곧 아쉬움이다. 양측의 요구는 사과, 재발방지와 방송중지였지만 남북대화로 풀어야 할 숙제가 수북하게 기다리지 않는가. 획기적인 콜라보레이션 구상과 핵 문제 등을 다룰 장치를 기대한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었다. 그만큼 답답하고, 민족과 국가에 절실하기 때문이다. 이번 접촉에서 남측은 대단히 유리한 입장이었다. 북한이 아무리 공산주의 전술의 악령에서 헤매는 전제국가이라도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는 만큼 확성기 방송은 핵폭탄급 무기였다. 또 북의 준전시 상태 선포라는 패착에 맞춰 나온 미국의 B-52 전투기와 핵잠수함 배치 검토 언급은 무시무시한 ‘형’의 위세를 과시할 수 있는 암시였다. 더구나 예전과 달리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에 거리를 두고 있는 현실에서는 힘의 괴력을 실감시킬 수 있는 절묘한 싯점이었다. 다리를 잘린 병사들의 희생이 불러온 의외의 타협에서 그 전의 희생까지도 빛내기 위해서는 협상의 수칙인 창조적 대안을 제시해 결실을 얻었어야 했다.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도 재발 방지성 사과만 하면 북이 필요로 하는 5.24금지 해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 그 밖의 여러가지 지원도 가능하다는 보따리는 어디에 있었을까? 이제 그 일들이 후속 남북대화에서라도 이뤄져야 한다. 그것이 남과 북을 모두 돕는 일이기도 하고, 통일을 당기는 일이기도 하다. 남북관계의 포괄적인 설계자는 정상회담이다. 정상회담만이 새 지평을 열 힘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번 접촉에서 정상회담의 문고리를 잡았어야 했다. 화두는 필경 던져졌을 것이다. 아직 참석자들은 침묵하고 있다. 그 침묵이 긍정적인 단초를 싹틔우길 국민은 바랄 것이다. 흡수통일을 겨냥하지 않는 이상 고도의 협상력이 민족과 국가의 미래다. 객관적 기준과 합리적 논리로 무장한 탁월한 협상력이 엉키는 장애를 넘어 승리할 것이며, 통일을 수확할 것이다. <저작권자 ⓒ 세종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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