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국의 핵으로 떠오른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장관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를 놓고 정치권 각 진영마다 아전인수식 해석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송 전장관의 회고록과 기자 인터뷰 내용을 자세히 보면 故 노무현 대통령과 국무위원들간의 소통방식과 국정운영방식이 얼마나 민주적이고 인간적이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많다. 그도 이런 생각을 숨기지 않고 있다. 송민순 전 장관(북한대학원대학교총장)은 18일 오전 현재 자신의 근무처인 서울 삼청동 북한대학원대학교에 떼로 찾아온 기자들의 질문공세를 받았다. 그 중 한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회고록에 보면 (청와대회의) 엇갈린 상반된 의견들이 나오는데 계속 공직(장관직)을 계속 유지한 이유는 무엇입니까?”(기자) “제가 언제 무슨 직을 유지 했었습니까?(송민순 총장) “당시 문재인 비서실장이랑해서 안보라인과 충돌이 있었던 것 같은데 계속 외교장관직을 유지한 이유가 뭐냐는 겁니다.”(기자) “아니 제가 비서실장, 안보실장과 마찬가지로 노무현 대통령의 임명을 받아서 장관을 했습니다. 노무현대통령을 잘 보세요. 노대통령과 제가 이야기하는 데 다른 게 있으면 조정을 했지요? 그렇죠? 대통령과 장관은 기본 철학을 공유하고 생각을 그 때 그 때 조정하면서 국정을 하는 것 아닌가요?. 대통령이 일괄적으로 한 번 말하면 그냥 직통만 하는 게 아닙니다. 왜 국무위원입니까? 국무위원은 국가의 직무를 같이 하면서 최고통치권자하고 상황에 맞게 의논하면서 조정하는 게 국무위원입니다. 이걸 오늘 상황에서 잘 검토해야 합니다. 지금 국사(박근혜대통령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방식을 지칭한 듯)가 그렇게 이뤄지고 있어요? 거꾸로 물어볼게 어느 신문사기자입니까?”(송민순 총장) “KBS기자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국사가 그렇게 이뤄지고 있어요?”(송민순 총장) “제가 뭐 중립적인 입장에서...(KBS기자) “(그럼)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송민순 총장) “그건 제가 시민이 아니기 때문에....(KBS기자) “그럼 뭐 모르네”(송민순 총장) “새누리당도 마찬가지다. 새누리당이 대북정책을 뭘 잘했다고 과거 뒤집는데 초점을 맞춰서야 되겠느냐. 새누리당 스스로 현재 정부가 하고 있는 정책이 정말 실행가능성이 있는 것인지, 앞으로 전망이 있는지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했던 것을 레트로스펙트(retrospect·회고) 해보라” 송 전 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달을 지켜보라고 했는데 손가락만 쳐다보는 정치권 특히 박근혜 정부와 여당, 그리고 언론에 대한 불쾌함과 섭섭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반면 송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의견충돌이 있었던 비서관들과는 달리 노무현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에 대해 상당히 호의적으로 썼다. 제 12장 ‘시작만 있고 끝은 없는 대북정책’ 대목을 보면 이렇다. (발췌)그날 저녁 집무실로 돌아와 혼자서 많은 고민을 했다. 결국 대통령에게 마지막 호소문을 올리기로 했다. A4 용지 4장에 만년필로 나의 생각을 담아서 밤 10시경 대통령 관저로 보냈다. 서한의 요지는 이러했다. <저의 거칠지만 솔직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6자회담 수석대표, 안보실장, 그리고 외교장관에 봉직하면서, ‘한반도 분단 해소’를 향한 대통령의 꿈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부족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왔습니다....(중략)기권할 경우 앞으로 남은 기간 비핵화를 진전시키고, 평화체제 협상을 출범시키는 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막막합니다.> 나는 편지를 쓰면서 왕조시대에 상소문을 올릴 때 이런 심정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틀이 지나 11월18일 일요일 저녁에 연락이 왔다. 장관들이 다시 모이자는 것이었다. 대통령이 나의 편지를 보고, “그동안 외교부가 여러 나라를 설득해서 결의안 문안까지 완화시켰는데 지금 와서 기권하자면 민망할 것이다. 그런데 찬성을 해서 남북관계에 영향을 줄 위험도 생각해야 한다. 엊그제 북한 총리에게 이 문제를 가볍게 언급했더니 ‘일 없다’고 지나가듯이 이야기하던데 좀 더 챙겨볼 걸 그랬나”라고 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주무기관인 외교장관이 그토록 찬성하자고 하니 비서실장이 다시 회의를 열어 의논해보라고 지시한 것이다...(중략) 나는 달리 쳐다볼 곳이 없어 한참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차가운 침묵이 흘렀다. 대통령도 기분이 착잡한 것 같았다. “북한한테 물어볼 것도 없이 찬성투표하고, 송 장관한테는 바로 사표를 받을까 하는 생각도 얼핏 들었는데....”하며 말을 끝맺지 않았다. 외교장관이 알아서 찬성투표하게 해서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체면은 살리고, 그 후 장관을 해임하면서 북한에 대한 입지도 살리는 고육지계를 생각했던 것으로 보였다. 나는 “그게 오히려 맞습니다. 지금 이 방식은 우리의 대북정책에도 좋지 않고 대외관계 전반에도 해롭습니다”라고 했다. 노 대통령은 “그런데 이렇게 물어까지 봤으니 그냥 기권으로 갑시다. 묻지는 말았어야 했는데... 송 장관 그렇다고 사표 낼 생각은 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정부 임기가 6개월 정도만 남았더라도 사표를 냈겠지만 석 달을 앞두고 나의 명분만 차리겠다고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노 대통령은 잠시 후 “나 참, 공기가 무거워서 안되겠네” 하면서 침실로 들어갔다.(중략) 송 전 장관은 측근들의 틈바니구에서 정통 관료인 외교장관의 의견을 끝까지 경청하고 설득하려고 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인간적 면모와 자신의 소회를 글 곳곳에 남기고 있다. 이 증언만 봐도 지금 박근혜정권의 소통없는 일방통행식 지시와 소신없는 국무위원들의 행태가 얼마나 문제가 있는지 국민들은 비교하며 느낄 수 있을 듯하다. 과거를 토대로 미래를 전망해보자며 답답한 현 정국에서 나름대로 진정성을 가지고 제시한 회고록이 아전인수로 해석되는데 대한 송민순 전 장관의 불쾌감과 곤혹스러움은 그러나 이런 의도와는 달리 현 정권의 국정 전환용으로 악용되며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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