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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캐는 심마니, 한돌

독도, <홀로아리랑>에서 <독도의 사랑>까지 (5)

이정식 | 기사입력 2014/04/02 [23:26]

노래 캐는 심마니, 한돌

독도, <홀로아리랑>에서 <독도의 사랑>까지 (5)

이정식 | 입력 : 2014/04/02 [23:26]

한돌은 음악회에서 노래를 한곡 한곡 자신이 직접 소개했다. 어디에서 어떤 상황 속에서 작사 작곡 됐는지, 독도 노래가 만들어진 사연들에 대한 설명이었다.

공연 프로그램을 만들 때 기획자가 “<홀로아리랑>외에 다른 독도 노래들은 관객들에게 생소하게 들릴테니 다른 히트곡들을 중간 중간 섞어서 구성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의했으나 ‘독도 노래만으로 하자’는 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국민 모두가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지만, ‘독도음악회’라고 하니 대개들 ‘왠지 재미없을 것 같다’는 느낌을 갖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날 청중들의 반응은 좋았다. 뜨거웠다기 보다는 따뜻했다고 하는 평이 나을 것 같다. 대체로 “독도음악회라고 해서 재미없을 줄 알았는데 재미있었고 매우 의미있는 음악회였다”는 반응이었다. 자녀들을 데리고 온 부부들도 많았다.
어떤 분들은 “이런 내용의 음악회라면 전국의 지자체가 서로 주최하려고 하지 않겠느냐?”고도 했다.
작사 작곡가가 곡을 직접 소개하면서 한곡 한곡 들려주는 진행 형식 덕에 많은 곡들이 생소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친근하게 다가간 것 같았다. 중요한 것은 곡들이 하나 하나 다 좋았다는 것이다.
자칫 잊혀지고 묻힐 뻔했던 20년 이상을 공들인 한돌의 아름다운 독도 노래들이 이번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 공연을 통해 다시 부활하여 세상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한돌은 이런 독도 음악회가 성황리에 열렸다는 자체가 “기적‘이라고 말했다.

▲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10년 넘은 국방색 모자를 쓴 한돌

지난 시절, 히트곡 낸 후 오히려 상처 받아

어쩌다 한돌을 접할 때 마다 “참 순박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곤 한다.
조선일보, 경향신문, 뉴스1 등 여러 언론매체에서 이 공연과 관련하여 한돌과 인터뷰를 했는데,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 옷차림으로 나타날까 의아했다.
필자가 사장으로 있던 때인 2012년 11월, 인터뷰를 위해 뉴스1 편집국에 나타났는데, 조선일보와 경향신문에 실린 사진의 복장과 똑 같았다. 오래된 둥근 모자에 허름한 국방색 코트 차림이다.
한돌은 가수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연예인이기도 한데 옷차림에 전혀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았다.
인터뷰 내내 모자를 절대 안 벗었다. 보통의 둥근 테를 가졌는데 카우보이 모자도 아니고 각설이 모자도 아니다. 평범한 국방색의 낡은 모자다. 10년이 넘었다고 했다. 모양은 등산가 엄홍길 대장이 각종 사진에서 쓰고 나오는 모자와 비슷하다.

그런 모자를 무슨 모자라고 하느냐고 한돌에게 물어봤다.
그냥 산에 쓰고 다니는 모자인데, 자기는 ‘인디애나 존스 모자’라고 부른다고 했다.
공연할 때도 계속 쓸 것이냐고 내가 물었다.
“모자를 벗으면 노래가 안된다”고 하였다.

나는 혹시 코트차림 그대로 무대에도 서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렇다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다행히 그렇게는 하지 않았다. 내 걱정을 눈치챘는지 “집에서 찾아보니 재킷이 하나 있어 입고 왔다”고 했다.
그는 도통 자신을 선전하거나 인기 관리를 위해 이런저런 일을 꾸미려 하지 않는다.
그는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 히트곡을 계속해 냈을 때는 오히려 몇몇 사람들로부터 깊은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들을 입밖에 내려고 하지 않는다.
“좋지 않은 이야기를 뭐 하러 다시 하느냐?”는 거였다.

▲ 공연후 노찾사 멤버들과 함께 (왼쪽에서 네번째가 한돌, 다섯번째가 필자)

노래 캐는 심마니

한돌은 방랑 김삿갓이다. 노래 캐는 심마니다. 늘 이산 저산으로 노래를 캐러(만들러) 다니는 것이 일이다. 다니는 것이 일인데도 그는 차가 없다. 면허증은 따 두었는데 운전할 일은 없었다고 했다.
그는 산에 올라 노래를 떠올린다고 한다. “1년에 하나 정도 캐면 다행‘이라고 말한다.
노래를 캐기 위해 압록강, 백두산, 두만강 등으로 이른바 ‘국경 순찰’도 한두번 한 게 아니다. 영하 43도까지 내려간 혹한 속의 백두산 천지에서 새해를 맞은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방랑에도 불구하고 2천년대 들어서서 10년 이상 노래가 떠오르지 않았다. 노래가 그를 완전히 떠났다고 절망하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노래가 다시 그에게 돌아왔다. 한돌은 2012년 12월의 독도음악회<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를 성공리에 마친 후 기대에 부푼 2013년을 맞았다.
그리고 1년이 더 지난 2014년 3월, 오랫만에 그와 통화를 했다.
“지금 어디 계신가?‘
“산에 와 있소.”
“지난해 노래는 좀 캐셨는지?”
“좀 캣지.”
“발표는?”
“녹음을 해야 발표를 하는데 아직 녹음을 못했소.”
“독도 노래는 더 안 말들었는지?”
“독도 노래는 이제 다 만든것 같은데...”
“미완성 독도 노래가 두 곡 더 있다고 했는데 완성하셨는지?”
“아직 못했소.”
이렇게 덤덤한 대화를 하고는 서로 “언제 한번 만나자”고 하고 전화를 마쳤다.
한돌은 자신이 만든 노래를 선전하기 위해 누구를 찾아 다니는 스타일이 아니니 새로 만든 노래도 언제 녹음을 하고 발표를 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속에 보석 같은 노래가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 찾는 사람이 임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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