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해영을 친일시인이라고 보는 시각 해석이 상반되는 시 가운데 가곡 <선구자>로 제목이 바뀐 <용정의 노래>와 형식면에서는 똑같으나 내용면에서는 친일 즉 만주국을 찬양하는 시라고 지적되는 <낙토만주(樂土滿洲)>를 예로 들어보자. <선구자> 멜로디를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윤해영을 친일로 비판하는 이들이 <용정의 노래(선구자)>와 비교하면서 그가 변절한 확고한 증거로 보고 있는 시다. 낙토만주 오색기 너울너울 낙토만주 부른다 송화강 천리언덕 아지랑이 행화촌(杏花村) 끝없는 지평선에 오곡금파(五穀金波) 굽실렁 (주: 원본의 내용이므로 현재의 맞춤법과 조금 다른 곳들이 있다) 이 시에 대해 윤해영의 친일 의혹을 가장 먼저 제기한 것으로 알려진 전 인천대 오양호 교수는 그의 논문 <윤해영 시의 율격과 시대의식 고찰>(1995.5)에서, “여기서 ‘이 나라’는 말할 것도 없이 일본이 세운 허수아비 나라 만주국이며, ‘선구자’의 의미는 (조두남이 곡을 붙인 앞의 가곡 <선구자>의 그것과) 정반대”라고 지적하고 있다. 말하자면 변절의 증표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설사 <선구자>가 문학성이 높은 시로 평가된다고 하더라도 (그의 다른 작품인) <낙토만주> <척토기> <오랑캐 고개> 등에 나타나는 반민족적 시의식으로 하여, 그를 일제에 항거하고 그 투혼을 노래한 민족문인의 차원으로만 이해되는 것은 문학사적 면에서 볼 때 올바른 자리매김이 아니다. 따라서 <중국조선족문학사>의 기술과 같은 평가는 재고 되어야 한다”고 했다. 오교수가 자신의 논문에 인용한 <중국조선족문학사>의 <선구자>에 대한 기술은 다음과 같다. “선구자는 1930년대 초기에 창작된 후(조두남 작곡) 널리 보급되어 크낙한 영향력을 산생한 노래이다. 이 작품에서 시인은 현대의 령마루에 서서 흘러간 민족의 력사를 돌이켜 보면서 외래의 강포에 대항하고, 민족해방을 위하여 분연히 떨쳐나 슬기와 용맹, 절개와 위훈으로 자랑을 떨친 우리 조상들 특히 선구자들을 절절하게 추모하면서 민족의 비운을 찬몸에 지니고 나라와 미녹을 건져 낼 선구자들의 출현을 그 같이 고대하고 있다. 한 문예비평가의 반론: 윤해영은 친일시인 아니다. 그러면 윤해영을 친일시인이 아니라고 보는 측의 시각은 어떠한가? 문예비평가 김영수씨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2005년 ‘윤해영은 친일시인이 아니라 진솔한 민족 시인’이라는 내용이 담긴 <몽상의 시인 윤해영>(우신출판사, 2005)이란 책을 펴냈다. 이 책에서 그는 전해지는 윤해영의 시 9편 (<용정의 노래> <만주 아리랑> <오랑캐고개> <해란강> <아리랑 만주> <발해고지> <사계> <척토기> <낙토만주>)을 모두 분석한 결과 그러한 결론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김영수씨는 “<낙토만주>는 고구려와 발해의 환유로 민족의 꿈이고 기도이다. 또 기도가 소원하는 파노라마의 내용이다.”라고 해석한다. 만주국을 찬양하는 시가 아니라 만주가 사실은 고구려와 발해의 땅이었으니 의당 지금도 우리의 땅이라는 저의가 담긴 시라는 것이다. 오색기는 바로 오족(五族)을 나타내는데 만주국을 구성하는 주요 다섯 족속 즉, 한족, 만주족, 조선족, 회족, 일본족을 일컫는다. 신해혁명 때의 오족은 중국 한족, 만주족, 몽고족, 회족, 서장족이었으며, 고구려의 오족은 계루, 순노, 소노, 관노, 절노의 다섯 족속이라고 그는 설명하고 있다. 김영수씨는 시를 외향적 의미로 단정짓는 무지한 현상이 안타깝다면서, 윤해영을 이렇게 규정한다. <저작권자 ⓒ 세종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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