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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빛바랜 울릉도 도동항의 독도 광고벽과 독도 노래비

기획연재 '독도로 가는 길' (1)

이정식 / 언론인 | 기사입력 2014/05/19 [22:52]

[단독]빛바랜 울릉도 도동항의 독도 광고벽과 독도 노래비

기획연재 '독도로 가는 길' (1)

이정식 / 언론인 | 입력 : 2014/05/19 [22:52]
▲ 울릉도 도동항

관리 소홀로 독도 광고벽과 노래비의 의미 퇴색

울릉도 도동항에는 한반도 지도가 커다랗게 그려져 있는 파란색 광고벽이 있다. 조그만 도동항이 바로 내려다 보이는 골목입구의 항구쪽 벽면이다. 지도 오른쪽 아래에는 흰글씨로 “독도를 잃으면 나라를 잃는다”는 글귀가 적혀있다.
영어로 “The Loss of Dokdo, The Loss of Korea"라고 번역해 놓았다. 일본이 호시탐탐 노리는 독도가 우리나라에 얼마나 중요한 섬인지 외국 사람에게도 알리겠다는 의도다.
광고벽은 2013년 10월 NH농협이 기획하여 만든 것이었다. 내가 도동항에 간것은 2014년 5월 15일. 반년 조금 지났을 뿐인데 벽면의 페인트가 벌써 군데군데 변색이 되어 깨끗한 광고벽의 인상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적혀있는 내용이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있는 것인데 이렇게 밖에 관리 못하는 것일까.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 도동항의 독도 광고벽. 오른쪽 아래에 '독도를 잃으면 나라를 잃는다'고 적혀있다.

벽면 바로 아래 작은 잔디밭에는 벽면과 같은 파란 색깔의 작은 글자판이 놓여져 있었다. 글자판에는 흰글씨로 이렇게 써 놓았다.

“벽면작품설명: 독도를 잃으면 나라를 잃는다.
대한민국 지도가 거의 물 속에 잠겨있고 수면 위에 떠 있는 지도의 윗부분을 독도로 표현하여 마치 독도가 빙산의 일각처럼 표현된 이 작품은 독도 문제가 단지 작은 섬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의 운명이 걸린 중요한 문제임을 시사하고 있다.”

그제서야 이 벽면의 한반도지도가 작품인줄 알았다. 광고작품이란 말일게다. 그림을 다시보니 한반도 전체가 푸른 바다에 잠겨있고 함경북도 맨위 끄트머리만 바다위에 나와있는 것처럼 그린 그림이다. 정작 동해의 울릉도와 독도는 얼룩진 벽면 속에서 잘 보이지도 않았다. 좋은 아이디어라고 해야할지 어떨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런데 이 광고벽 조금 앞에 글씨가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비가 하나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정광태가 부른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노래의 가사를 새긴 노래비다. 음각으로 새겨진 글씨의 검정색이 지워져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여기에 노래비를 세운 이유는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가사를 한번씩 읽어보라는 의미일텐데 도통 글씨가 보이지 않으니 무슨 소용이 있는 노래비인가.

▲ 도동항의 <독도는 우리땅> 노래비. 글자를 잘 읽을 수 없다.

도동항은 한해 수십만명이 오가는 울릉도의 관문이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로 하여금 독도 수호의 의지를 다지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광고벽도 만들고 노래비도 세웠을 것인데 이렇게 관리를 소홀하게 해서야 되겠는가. 당초의 목적과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는 듯 하였다.

혹시 작사작곡가이며 가수인 한돌이 독도에 12차례나 드나들며 고생스런 환경 속에서 만든 <홀로아리랑> 노래비는 없나 찾아봤는데 눈에 띄지 않았다. <홀로아리랑>이야 말로 독도가 낳은 작품이라고 할 것이다. 울릉도나 독도에 <홀로아리랑>노래비도 하나쯤 세워야하지 않겠나하는 생각도 혼자 해봤다.

독도는 일본이 최초로 강탈한 우리땅

독도는 울릉도의 부속섬이다. 구한말 일본이 한국을 야금야금 침범하면서 최초로 빼앗아간 우리땅이었다.
러일전쟁이 한창일 때인 1905년 일본은 독도가 무주지(無主地) 즉 주인없는 섬이라며 자기네 시마네 현으로 편입시켰다.
일본은 당시 독도에 다량으로 서식하는 물개비슷한 강치를 독점적으로 잡을 궁리를 하던 기업적인 수산업자 나카이 요사부로라는 자의 청원을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독도 편입을 결정했으나 실은 노일전쟁을 치르면서 독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깊이 인식한 결과였다. 

▲ 독도에 서식했던 물개 비슷한 강치

(강치는 1900년대 초에는 수만마리가 독도주변에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가죽을 탐낸 일본인들의 남획으로 지금은 사실상 멸종 상태다. 일본의 한 수산회사가 1904년부터 8년동안 약 1만 4천마리의 강치를 잡았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나카이 요사부로의 회사인 듯 하다.)

1904년 2월8일 중국 뤼순항에 있던 러시아 군함 2척을 기습 공격함으로써 러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보름후인 2월 23일 군대를 동원하여 우리의 대궐을 포위하고 대한제국의 황실을 협박하여 ‘일본군의 주둔은 물론 군사전략상 필요한 지점을 점령, 수용할 수 있는 권리’가 들어있는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하였다.
이어 4월에는 조선주차군 사령부를 설치하고 일본군을 조선 전역에 확대 배치하였고, 9월부터 러시아 함대의 이동을 감시하기 위하여 울릉도의 서쪽과 남쪽, 그리고 독도에 감시망루를 설치하였다. 일본의 독도 침탈은 이렇게 시작되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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