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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의 작가노트] 도스토옙스키의 천국과 지옥 ② 지옥은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고통:세종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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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의 작가노트] 도스토옙스키의 천국과 지옥 ② 지옥은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고통

이정식 대기자 | 기사입력 2020/03/17 [09:24]

[이정식의 작가노트] 도스토옙스키의 천국과 지옥 ② 지옥은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고통

이정식 대기자 | 입력 : 2020/03/17 [09:24]
시베리아 옴스크의 도스토옙스키 동상 [이정식 대기자]
시베리아 옴스크의 도스토옙스키 동상 [이정식 대기자]

만족할 줄 모르는 자만 = 지옥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에서 조시마 장로의 설교를 통해 도스토옙스키는 이렇게 지옥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지옥이란 무엇일까?>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결코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고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이나 공간으로도 측정할 수 없는 무한한 세계 속에서 어떤 정신적 존재에게는 지상에 머물며 스스로 <나는 존재한다. 고로 사랑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이 단 한 번 부여됩니다. 그에게는 <살아 있는> 활동적인 사랑의 순간이 한 번, 단 한번만 부여되어 있으며, 그것을 위해서 지상의 삶이 부여되었고 그와 더불어 시간과 제한된 세월이 부여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행복에 겨운 존재는 소중한 선물을 거절하고 존중하지도 아끼지도 않고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무관심하게 방치하고 말았습니다.

(···)

지옥에는 자만에 빠진 자들과 잔인한 자들이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사탄과 오만한 영혼에 온몸을 내던진 무서운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지옥은 이미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것이며 또 만족할 줄도 모릅니다. 즉, 그들은 자발적인 수난자들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스스로 자신을 저주해왔고, 하느님과 삶을 저주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마치 사막에서 굶주린 자가 자기 몸뚱이의 피를 빨기 시작하듯이 악의에 찬 자만심을 먹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히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용서를 구하지 않고 자신들을 부르는 하느님을 저주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살아 계신 하느님을 증오 없이는 바라볼 수 없으며, 생명의 하느님께서 사라져 주기를, 하느님께 자신과 모든 피조물들을 파멸시켜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분노의 불길 속에서 자신을 영원히 불사르며 죽음과 허무를 갈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조시마 장로는 이같이 지옥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살인을 숨긴 채 살아 온 그 존경받는 사회사업가가 자신의 죄를 사람들 앞에서 고백하기 전에 장로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한다.

“내가 고백하는 순간 천국이 찾아오리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옥 속을 14년이나 헤맸지요. 이젠 고통받고 싶습니다. 고통을 받아들이며 살고 싶습니다. 거짓 세상을 살게 되면 그땐 뒤로 돌릴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으로서는 가까운 이웃은 물론 자식들마저도 사랑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고통>이 바로 지옥이라는 도스토옙스키의 지옥에 대한 정의는 이처럼 죄를 숨기고 살아 온 살인자의 고백을 통해 강조된다. 이 사람은 그 후 마을사람들이 많이 모인 어떤 자리에 참석했을 때 자신의 죄를 공개적으로 고백하지만, 처음엔 누구도 그 말을 곧이듣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피살된 여인의 금붙이, 목걸이, 십자가 등을 범행의 증거로 내놓았지만, 모두들 병든 환자가 떠들어대는 헛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는 실제로 얼마 후 죽고 말았지만, 죽기 전 조시마 장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조시마 장로가 수도원에 들어가기 전이고 나이 차이도 많았으므로 어투도 반말로 바뀐다.

<(···) 나는 내가 곧 죽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몇십년 만에 처음으로 기쁨과 평화를 느끼고 있어. 내가 할 일을 하자마자 난 내 영혼 속에서 천국을 느꼈던 거야. 이젠 내 아이들을 사랑할 수도 있고 그 애들한테 입을 맞춰 줄 수도 있어. 사람들은 내 말을 믿지 않고 또 아무도 귀 기울이려 하지 않아. 아내도, 재판관들도 말이야. 게다가 아이들도 전혀 믿지 않지. 그걸 보면 내 아이들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를 알 수 있거든. 나는 죽어가지만 내 이름은 아이들에게 오점을 남기지 않게 될 거야. 그래서 지금 하느님을 예감하고 있고, 마음은 마치 천국에서처럼 기쁘거든······ 의무를 다했으니······.>

도스토옙스키의 이같은 천국과 지옥에 관한 정의는 물론 소설 속의 묘사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쓰라린 인생의 체험과 사색을 통해 영글어 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에 나오는 예화지만, 이보다 10여년 전에 쓰여진 『죄와 벌』의 테마도 결국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천국과 지옥이라고 할 수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만 59세 때인 1881년 1월 28일 폐출혈로 누운지 이틀 만에 조용히 고난의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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