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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엡스키 두 번 죽다(9), 시베리아 유형지 옴스크:세종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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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엡스키 두 번 죽다(9), 시베리아 유형지 옴스크

* 앞의 '사형수가 된 소설가' (1~8)에서 이어집니다. (편집자)

이정식 작가 | 기사입력 2020/03/26 [20:56]

도스토엡스키 두 번 죽다(9), 시베리아 유형지 옴스크

* 앞의 '사형수가 된 소설가' (1~8)에서 이어집니다. (편집자)

이정식 작가 | 입력 : 2020/03/26 [20:56]
눈 내린 시베리아 옴스크역
눈 내린 시베리아 옴스크역

눈 내리는 옴스크역에 내리다

2017년 10월 5일 오전 6시 30분. 필자가 도착한 옴스크역 플랫폼에는 눈이 펄펄 내리고 있었다. 시베리아 중심도시 노보시비르스크에서 밤 기차로 8시간 반만에 옴스크에 도착했다. 9288km에 이르는 시베리아 횡단철로의 한 구간인 630km를 달려 온 것이다, 기온은 –1°C. 우리나라의 추석 다음날이다.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서쪽으로 600km 가량 떨어져있는 옴스크의 인구는 약 118만 명(2017년 현재, 2918년엔 117만2천). 이르티시 강과 옴강이 만나는 합류지점에 18세기 초 군사요새가 세워지면서 서 시베리아 개척의 중심지로 발전했는데 현재 시베리아에서 인구 140만의 노보시비르스크에 이어 두 번 째로 큰 도시다. 이곳에 도스토옙스키 박물관이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여기에서 1850년부터 1854년까지 꼬박 4년간 족쇄를 찬 채 유형생활을 했다. 그가 생애 최악의 시간을 보낸 끔찍한 곳이다. 그는 옴스크에서의 유형생활을 종종 지옥에 빗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훗날 “그 기간이 자신의 혼의 구제를 위해 중요하고도 유익했던 때”라는 말을 남겼다. 실로 훌륭한 긍정 마인드다. 그러한 마음가짐이 그가 후반 생애에서 부닥친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불후의 명작들을 남긴 밑거름이 됐을지 모른다.

도스토옙스키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와 유형지에서의 체험을 『죽음의 집의 기록』(1862)이란 제목의 책으로 펴냈다. 최고의 작가답게 수용소의 모습 등을 -당국의 검열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생생하게 그려냈다. 아내를 죽인 혐의로 10년 유형살이를 하고 나온 후 죽은 어떤 사람, 즉 제3자가 남겨 놓은 수기 형식으로 썼지만 실은 자신의 이야기다.

시베리아에 있는 세 곳의 도스토옙스키 박물관

나는 옴스크에서는 만 하루 머물렀다. 이튿날 오전 9시 30분경에 다시 노보시비르스크 가는 기차를 타야했기 때문이다. 짦은 휴가를 내 쫒기듯 다녔으므로 시베리아에서의 일정은 언제나 여유롭지 못했다. 목적지까지의 거리가 워낙 멀고 비행기나 기차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아 한 번에 한 곳 밖에 갈 수 없었다. 뒤에 차차 이야기하겠지만, 시베리아의 도스토옙스키 흔적이 있는 세 곳 즉 옴스크, 노보쿠즈네츠크(옛 쿠즈네츠크) 그리고 카자흐스탄의 세메이(옛 세미팔라틴스크, 지금은 카자흐스탄의 영토다)의 도스토옙스키 박물관에 가기 위해 세 번의 여행을 했다.

옴스크에는 당연히 도스토옙스키 박물관 방문이 첫 째 목적이었다. 박물관이 10시에 문을 연다고 해 역 카페에서 러시아식 만두로 아침을 때우고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다 역 앞에 나가 택시를 탔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눈이 계속 내리고 있다. 도로는 눈으로 질펀했다.

10시 조금 지나 도스토옙스키 박물관에 도착했다. 정식 명칭은 ‘도스토옙스키 옴스크 국립문학 박물관’. 박물관은 19세기 중엽까지 옴스크 요새 사령관의 관사로 쓰던 단층 건물이다. 1983년부터 도스토옙스키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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