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은 하얼빈에서 열차를 타고 북만주의 광활한 광야를 지나 얼음의 땅 시베리아로 향한다. 그가 내릴 곳은 시베리아 가운데에 있는 작은 도시 이르쿠츠크. 최종 목적지는 바이칼 호수다. 소설 속의 ‘그’가 열차를 타고 가면서 본 풍경을 묘사한 대목은 탁월하다. 바로 이광수의 글솜씨다. 당대 최고의 소설가다운 유려한 문장이다. 가도 가도 벌판. 서리 맞은 마른 풀 바다. 실개천 하나도 없는 메마른 사막. 어디를 보아도 산 하나 없으니 하늘과 땅이 착 달라붙은 듯한 천지. 구름 한 점 없건만도 그 큰 태양 가지고도 미처 다 비추지 못하여 지평선, 호를 그린 지평선 위에는 항상 황혼이 떠도는 듯한 세계. 최석이 탄 열차는 당시의 동청철도(지금의 만주 횡단철도) 구간인 하얼빈-치치하얼-만주리를 거쳐 러시아의 카림스카야 역까지 갔을 것이다. 이곳에서 블라디보스톡에서 달려온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갈아타고 서쪽의 이르쿠츠크로 향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러면 여기서 잠시 시베리아 횡단철도에 대해 알아보자. 이 철도는 1891년 3월 짜르 알렉산드르 3세의 칙령에 따라 착공되었다. 교통장관 세르게이 비테 (1849-1915)의 강력한 건의가 받아들여진 결과였다. 비테는 다음해인 1892년 재무장관이 되며 1905년 러시아 최초의 수상에까지 오른 탁월했던 인물이다. 블라디보스톡에서 거행된 착공식에 황태자 참석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착공식은 이해 5월 블라디보스톡에서 거행되었다. 알렉산드르 3세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중요성을 감안해 기공식에 후일 짜르 니콜라이 2세가 되는 황태자를 착공식에 보냈다. 출발은 칙령을 공포하기 전에 이뤄졌다. 니콜라이 황태자는 당시 23세였다. 당시 황태자가 블라디보스톡까지 가는 경로가 흥미롭다. 육로로 가지 않고 유럽을 거쳐 바다로 삥 둘러갔다. 황태자 일행은 오스트리아를 거쳐 그리스로 가서 러시아 군함 아조바 호를 타고 홍콩, 일본을 거쳐 블라디보스톡까지 갔다. 니콜라이 황태자는 일본 체류 중 일본 경찰관의 저격을 받아 머리에 부상을 입기도 했다. 일본은 이 사건이 외교적인 문제로 비화될 것을 우려해 당시 메이지 천황이 직접 황태자를 찾아가 위로하는 등 황태자가 일본을 떠날 때까지 최대한의 예우를 했다고 한다.. <저작권자 ⓒ 세종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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