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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횡단열차 ( Ⅰ ):세종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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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횡단열차 ( Ⅰ )

소설 <유정>의 무대 '바이칼' (4)

이정식 / 언론인 | 기사입력 2013/12/08 [23:01]

시베리아 횡단열차 ( Ⅰ )

소설 <유정>의 무대 '바이칼' (4)

이정식 / 언론인 | 입력 : 2013/12/08 [23:01]

 

▲ 옛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기관차. 바이칼 호수변 환바이칼 관광열차 구간에 전시되어 있다.

최석은 하얼빈에서 열차를 타고 북만주의 광활한 광야를 지나 얼음의 땅 시베리아로 향한다. 그가 내릴 곳은 시베리아 가운데에 있는 작은 도시 이르쿠츠크. 최종 목적지는 바이칼 호수다. 소설 속의 ‘그’가 열차를 타고 가면서 본 풍경을 묘사한 대목은 탁월하다. 바로 이광수의 글솜씨다. 당대 최고의 소설가다운 유려한 문장이다.

가도 가도 벌판. 서리 맞은 마른 풀 바다. 실개천 하나도 없는 메마른 사막. 어디를 보아도 산 하나 없으니 하늘과 땅이 착 달라붙은 듯한 천지. 구름 한 점 없건만도 그 큰 태양 가지고도 미처 다 비추지 못하여 지평선, 호를 그린 지평선 위에는 항상 황혼이 떠도는 듯한 세계.
이 속으로 내가 몸을 담은 열차는 서쪽으로 서쪽으로 해가 가는 걸음을 따라서 달리고 있소. 열차가 달리는 바퀴 소리도 반향할 곳이 없어 힘없는 한숨같이 스러지고 마오.
기쁨 가진 사람이 지루해서 못 견딜 이 풍경은 나같이 수심 가진 사람에게는 가장 공상의 말을 달리기에 합당한 곳이오.

▲ 소설 속에 묘사된 '서리 맞은 풀바다'를 연상케 하는 시베리아 평원 (2013년 9월 하순 촬영)

최석이 탄 열차는 당시의 동청철도(지금의 만주 횡단철도) 구간인 하얼빈-치치하얼-만주리를 거쳐 러시아의 카림스카야 역까지 갔을 것이다. 이곳에서 블라디보스톡에서 달려온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갈아타고 서쪽의 이르쿠츠크로 향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바이칼 호수는 이르쿠츠크에서 남쪽으로 65km 떨어져있다. 길이가 600km가 더 되는 바이칼 호수를 이르쿠츠크에서 얼마 떨어져있다고 표현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이르쿠츠크에서 앙가라강을 거슬러 올라가 만나는 이 도시에서 가장 가까운 바이칼의 첫 호반마을 리스트비얀카가 그만큼 떨어져 있다는 의미다. 소설 속 최석의 여행 경로는 이광수가 과거에 여행했던 경로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여기서 잠시 시베리아 횡단철도에 대해 알아보자.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 길이 9,288km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다. 종착역인 블라디보스톡 아래 나호트카 항까지를 더하면 총연장은 9,441km에 달한다. 지구둘레 (4만120km)의 4분의 1에 가깝다. 서울-부산간 철도의 길이(441.7km)의 약 22배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출발역은 모스크바 야로슬라블 역. 블라디보스톡까지 꼬박 6박 7일 걸린다.

이 철도는 1891년 3월 짜르 알렉산드르 3세의 칙령에 따라 착공되었다. 교통장관 세르게이 비테 (1849-1915)의 강력한 건의가 받아들여진 결과였다. 비테는 다음해인 1892년 재무장관이 되며 1905년 러시아 최초의 수상에까지 오른 탁월했던 인물이다.

블라디보스톡에서 거행된 착공식에 황태자 참석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착공식은 이해 5월 블라디보스톡에서 거행되었다. 알렉산드르 3세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중요성을 감안해 기공식에 후일 짜르 니콜라이 2세가 되는 황태자를 착공식에 보냈다. 출발은 칙령을 공포하기 전에 이뤄졌다. 니콜라이 황태자는 당시 23세였다.

당시 황태자가 블라디보스톡까지 가는 경로가 흥미롭다. 육로로 가지 않고 유럽을 거쳐 바다로 삥 둘러갔다. 황태자 일행은 오스트리아를 거쳐 그리스로 가서 러시아 군함 아조바 호를 타고 홍콩, 일본을 거쳐 블라디보스톡까지 갔다. 니콜라이 황태자는 일본 체류 중 일본 경찰관의 저격을 받아 머리에 부상을 입기도 했다. 일본은 이 사건이 외교적인 문제로 비화될 것을 우려해 당시 메이지 천황이 직접 황태자를 찾아가 위로하는 등 황태자가 일본을 떠날 때까지 최대한의 예우를 했다고 한다..
황태자는 1891년 5월 31일 블라디보스톡에서 거행된 착공미사와 기공식을 마친 후에는 마차를 타고 3개월간의 긴 시베리아 육로 여행 끝에 뻬쩨르부르크 황궁으로 돌아왔다.
(당시 수도였던 뻬쩨르부르크와 모스크바 사이와 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우랄지역의 첼랴빈스크까지는 이미 철도가 부설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1891년부터 시작된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건설은 우랄동쪽으로부터 블라디보스톡 구간의 공사였다.)
그런데 러시아가 최초로 건설한 시베리아 횡단철로의 바이칼 동쪽 구간은 지금의 치타에서 하바로프크스를 거쳐 블라디보스톡까지 가는 러시아 영토 구간이 아니었다. (5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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