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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하식 칼럼] 탐정 합법화 이후 한국판 셜록 만날 수 있을까?

송하식 전 국방일보 편집인 | 기사입력 2020/11/27 [06:53]

[송하식 칼럼] 탐정 합법화 이후 한국판 셜록 만날 수 있을까?

송하식 전 국방일보 편집인 | 입력 : 2020/11/27 [06:53]
송하식 전 국방일보 편집인.
송하식 전 국방일보 편집인.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하는 명탐정 셜록 홈스와 에르큘 포와로. “자네는 오늘 아침 우체국에 갔고, 전보를 쳤군.” 관찰과 추리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 그가 던진 말이다. “대체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알고 있지?” 상대방이 궁금해하자, 그의 설명이 이어진다. 구두코에 묻은 ‘붉은 흙’을 관찰한 결과라고. “우체국 건너편은 도로 공사로 보도블록이 파헤쳐져 흙이 드러나 있네. 우체국에 가려면 반드시 그 흙을 밟고 지나가야 하지. 그리고 그곳 흙은 다른 곳과 달리 독특하게 붉은색이야.” 그렇다면 전보를 쳤다는 사실을 그는 어떻게 추리한 걸까? “나는 자네와 오늘 아침에 계속 마주 앉아 있었고, 자네가 편지를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 전보를 치려는 게 아니라면 우체국에 갈 이유가 없지 않은가.”

아서 코난 도일의 추리소설 속 셜록 홈스의 모습이다.

작은 단서 하나로 사건 이면에 숨겨진 거대한 실체를 파악하고 범인을 잡는 모습을 보면서, ‘그때 그 시절’ 홈스와 같은 명탐정이 되고자 하는 꿈을 꾼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만큼은 제대로 된 탐정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왜 그랬을까? 왜 한국에서는 탐정이 없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탐정이란 직업 자체가 한국에선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홈스처럼 민간인이 수사기관의 수사과정에 개입하고, 사건의 증거를 수집하는 일은 한국에선 불법(不法)이었다. 탐정이란 말도 과거에는 쓸 수 없었다. 최근 국내 탐정의 합법화 바람을 타고 ‘한국판 셜록’을 이제 만날 수 있을까?

지난 11월 10일 국회에서 지난 8월 5일 합법화된 탐정(探偵)의 자격 요건을 규정하는 법안을 발의됐다. 이번 법안을 대표발의한 이명수 국민의힘 의원은 “탐정업의 올바른 정착을 위해 ‘탐정업 관리에 관한 법률(탐정사법)’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8월 신용정보법에서 탐정업 금지 조항이 사라진 뒤 국내에서 활동하는 탐정사는 약 8000여명이다. 탐정 관련 민간단체는 20여개, 자격증 종류는 무려 31개에 달한다.

이 의원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탐정에 관한 법률이 없어 검증되지 않은 탐정사무소와 관련 단체가 우후죽순 난립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관련 자격증을 대량 남발하면 기존 심부름센터나 흥신소 종사자도 탐정으로 활동할 수 있다”며 “무분별한 사생활 침해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국회에서 발의한 탐정사법은 탐정의 업무 범위와 자격 요건을 명확히 설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탐정이 되려는 사람은 경찰청장이 허락한 민간자격관리기관에서 실시하는 탐정사 자격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또 탐정사가 경찰청장이 지도하는 탐정사협회에 반드시 가입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 전과자나 파산한 자는 탐정이 될 수 없다는 규정도 들어갔다.

여기에 따르면, 실형 이상 선고를 받은 사람과 파산 선고를 받고 복권되지 않은 사람 등은 탐정사 등록을 할 수 없다. 탐정사가 업무 중 의뢰인에게 손해를 끼쳤을 경우 배상책임을 다하도록 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는 조항도 있다.

탐정사 자격 관리를 맡는 경찰청장은 이를 어기는 탐정업체의 설립인가를 취소하거나 영업 정지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이명수 의원은 “현실적으로 국가의 수사력은 시간적·물리적으로 한정돼 있다”며 “실종 가족의 소재 탐지, 지식재산권 피해 상황 등을 파악해야 할 때는 경찰이나 검찰에 도움을 청해도 만족할만한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경우 속칭 ‘심부름센터’에 의뢰해 문제 해결을 시도하다 각종 불법행위가 발생한다”며 “체계적으로 관리되는 탐정들이 이런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탐정사법 제정을 촉구한 정수상 대한탐정연합회 중앙회장(전 고양경찰서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해외에는 공권력 사각지대를 탐정들이 보완해주고 있다”며 “탐정사법이 통과돼 검증된 탐정이 활동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동안 경찰청 소관으로 마련됐거나 발의된 법안만 7건에 이를 정도로 그간 탐정 관련 논의는 숱하게 이뤄져 왔으나 번번이 국회의 높은 문턱을 넘지 못했다.

1999년 ‘공인탐정에 관한 법률안’이 마련됐으나 15대 국회에서 발의되지 못했다. 이후에도 17대 국회에서 ‘민간조사업법안’, 18대 국회에서 ‘경비업법 일부개정안’, 19대 국회에서 ‘경비업법 전부개정안’ ‘민간조사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안’, 20대 국회에서 ‘공인탐정법안’ ‘공인탐정 및 공인탐정업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됐으나 모두 미완에 그쳤다.

탐정업이 가능해진 것은 2018년 6월 헌법재판소가 탐정 명칭 사용 가능 결정을 한 데 이어 지난 2월 국회에서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면서부터다.

탐정업과 탐정 명칭 사용은 1977년 제정된 이 법에 따라 금지됐지만, 이번에 해당 조항이 삭제되면서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전격적인 시행을 맞게 됐다.

해당 소식을 가장 반기는 쪽은 퇴직을 앞둔 경찰관들이다. 일부 고위직 경찰관이 퇴직 후 로펌이나 대기업 고문 등으로 영전했던 것과 달리 일선 경찰관은 경비·보험업체 등을 제외하면 노후 진로 선택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인생 제2막을 열어젖힐 새로운 업종 등장에 전·현직 경찰관들을 중심으로 탐정 관련 자격증 취득 열풍이 불고 있다. 심지어 주상용 전 서울지방경찰청장도 지난 7월 25일 동국대 PIA(민간조사원) 최고위과정을 수료하는 등 탐정 관련 자격 인기가 나날이 높아지는 추세다.

은퇴를 앞둔 한 경찰관은 “노후 대비를 위해 행정사(行政士)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이 직업에 대한 수요도 없을 것 같고 적성과도 맞지 않을 것 같다”며 “탐정은 경찰 근무경험을 살려 활동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연 1조3000억원 규모의 시장이 열리고 1만5000여 명의 일자리가 창출된다.”

한국판 ‘셜록’, 탐정 시장이 활성화됐을 경우를 예측한 연구 결과 자료다. 그동안 한국에 탐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탐정이 합법화되기 전까지는 ‘민간조사사’라는 이름으로 활동해왔다.

장현석 경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등의 연구에 따르면, 국내에 탐정업을 도입하면 연 1조 3000억원 규모의 시장이 열리고 1만5000여 명의 고용이 창출될 전망이다.

단 이 같은 기대감이 단기간 내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업계에선 탐정 합법화 의미를 강조하면서도 실효성에선 다소 아쉽다는 평가가 함께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합법화로 간판에 ‘탐정’을 넣고 명함도 팔 수 있어 그야말로 탐정이 공식 직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진짜 탐정은 아직 대한민국에 탄생하지 않았다.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신용정보법)’ 개정으로 탐정 명의 영업은 가능해졌지만, 민·형사 사건에 대한 증거수집 활동이나 잠적한 불법행위자 소재파악 등은 여전히 현행법 위반 가능성이 있어서다. 이 같은 내용을 의뢰할 경우 의뢰인도 교사범으로 처벌될 수 있다.

탐정이 할 수 있는 업무는 ▲실종 가족 찾기 ▲소송자료 수집 대행 ▲보험사기 조사 서비스 의뢰 ▲교통사고 사고조사 등이다. 민간조사사들이 기존에 해왔던 업무다. 기존에 민간조사사가 하는 업무를 넘어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하는 행위를 할 경우에도 여전히 처벌 대상이 된다.

“경찰 관계자 : 법 개정으로 그동안 ‘탐정’이라는 명칭 사용을 금지하던 조항이 삭제됐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탐정의 업무로 여겨지는 민·형사 사건의 증거수집 활동, 잠적한 불법행위자의 소재파악 등은 여전히 제한된다.”

탐정 활동의 위법 여부는 사안별로 구체적으로 따져봐야 한다고 경찰 관계자는 설명했다. 특히 ▲배우자의 부정행위를 입증할 자료 수집 등 수사·재판 중인 사건에 대한 증거 수집은 변호사법 위반 소지가 있다. ▲잠적한 채무자의 은신처 파악, ▲가출한 배우자 소재 확인 등은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이 될 수 있다. ▲부동산등기부등본 등 공개된 정보의 대리 수집, ▲도난·분실·은닉자산의 소재 확인은 법(法) 개정 이전·이후 모두 가능하다.

최근 경찰청에 따르면, 민간조사(탐정) 관련 민간 자격증은 27개가 등록돼 있으며, 이 중 실제 발급 중인 자격은 4개다. 자격기본법에 따라 우리나라 자격증은 ▲국가자격 ▲국가기술자격 ▲공인 민간자격 ▲등록 민간자격 등 4개로 분류된다. 해당 탐정 관련 자격증들은 모두 민간 자격증으로 국가 공인 자격증은 없다.

위법한 내용이 아니면 누구나 관청에 등록한 뒤 ‘등록 민간자격’을 발급할 수 있다. 정부는 민간 탐정의 활동에 따른 폐해를 막기 위해 ‘공인탐정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최종 결론이 나기 전까지는 탐정 시장에 혼선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지난 8월 5일부터 자격증 없이도 사무소를 개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흥신소나 심부름센터가 탐정 간판을 달고 영업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들 역시 이 같은 걱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탐정 시장이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우선 ‘공인 탐정’ 도입을 위한 제도적 입법(立法)이 필요한 실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향후 공인탐정제도가 도입되면 특히 수사·형사·여성청소년 분과에서 근무했던 경찰관들이 혜택을 볼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공인탐정제도가 도입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사생활 침해 문제가 심해질 것’이라는 법조계의 강력한 반발 때문이었다.

그러나 경찰, 민간탐정업계 관계자들은 관리·감독 및 적발이 사실상 불가능한 현재의 음성화된 시스템이 더 큰 문제라는 입장이다.

사단법인 치안문제연구소 박호근 사무국장은 “공인탐정제도가 도입돼 허가받은 업체가 국가의 관리·감독을 받게 되면 사생활 침해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며 “한국의 경우 사기·고소의 85% 정도가 형사사건이 아닌 단순채무불이행 등 민사사건인데, 공인탐정제도 도입으로 경찰력 낭비가 해소돼 오히려 민생 치안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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