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곡 <고향>의 실종. 곡 하나에 세 편의 노랫말
고향 정지용 작시 채동선 작곡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 끝에 홀로 오르니 흰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소리 아니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고향>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시이긴 하지만, 그 이전에 고향을 그리며 지은 <향수>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고향에 돌아와도 내 고향 같지가 않다’ ‘그리던 고향이 아니다’라고 단정하고 있다. 정지용은 이 시를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후인 1932년에 발표했는데,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지하에서 신음하던 때다. 채동선에 의해 가곡으로 만들어진 <고향> 채동선이 음악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은 제1고보 시절 홍난파의 바이올린 연주에 감동되어 난파에게 바이올린 개인 교습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채동선은 정지용이 고향을 발표한 이듬해인 1933년 이 시를 노래로 만들어 도쿄에 유학 중이던 여동생인 소프라노 채선엽에게 보냈다. 미국에서 줄리어드 음악대학을 졸업한 소프라노 채선엽은 이해 도쿄에서 연 자신의 독창회에서 오빠가 보내온 이 곡을 처음 불러 조선 유학생들의 심금을 울렸다고 한다. 채동선은 6.25 전쟁이 끝나던 해인 1953년 2월 피난지 부산에서 병사했다. 채동선이 작곡한 가곡 12곡 중 8곡이 정지용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므로 난감했다. 미망인은 채동선과 가깝게 지낸 이은상 시인에게 그 곡들에 붙일 새로운 가사를 부탁했다. 그래서 <고향>대신 <그리워>라는 가곡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고향>은 전쟁 전부터 워낙 유명한 가곡이어서 당시에 이미 박화목 시인이 1953년에 쓴 <망향>의 새 가사로 널리 불려지고 있었으나 유족들과 상의해 붙인 것은 아니었던가 보다. 어쨌던 그러한 연유로 한 곡에 세 편의 노랫말이 생긴 것이다. <저작권자 ⓒ 세종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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