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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건너 봄이 오듯 (4)

이정식 / 언론인 | 기사입력 2015/04/13 [16:41]

강 건너 봄이 오듯 (4)

이정식 / 언론인 | 입력 : 2015/04/13 [16:41]
 

1973년 이전에 쓰여진 <그대 창밖에서> 가사

임긍수 작곡가와 통화를 한지 두 달쯤 후인 2014년 9월 하순, 고 박화목 시인의 아드님이 서울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박성혁 목사다. 나는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박 목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를 소개하고 전화를 건 가장 중요한 이유 즉, 가곡으로 불려지고있는 <그대 창밖에서>가 들어있는 시집을 알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박 목사는 처음에는 <그대 창밖에서>란 아버지 박화목 시인의 시가 있고, 그것이 노래로 불린다는 자체를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의 설명을 듣고 박 목사가 10여일 후 전화를 해왔다. 내가 찾아봤다는 6권의 시집(‘그대 내 마음의 창가에’, ‘시인과 세월’, ‘시인과 산양’, ‘그 어느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이처럼 꽃잎 흩날리는 날에’, ‘이 사람을 보라’)을 포함해 집에 있는 9권을 모두 살펴봤지만 그 시를 찾지 못했으나 가곡집에서 중요한 내용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으로 그가 찍은 가곡집 표지 사진과 악보를 나의 스마트폰으로 보내주었다.

1973년에 나온 세광출판사의 가곡악보집 <한국가곡200곡선, 하권>인데, 그 안에 박화목 작사, 김노현(악보집에는 김로현으로 적혀있다) 작곡의 <그대 창 밖에>의 악보가 들어있었다. <그대 창 밖에서>와 가사는 거의 같지만 멜로디는 전혀 다른 노래다.

제목이 당초에는 <그대 창 밖에>였던 모양이다. 김노현(1920~1993) 작곡가는 평양출신으로 서울대 치대를 나온 치과의사였으나 음악에 대한 관심과 재능이 있어 성악가와 작곡가로도 활약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유명 가곡의 하나인 <황혼의 노래>가 김노현 작곡가의 작품이다.

나는 박 목사와 통화를 하기 전에 이 노래 가사의 저작권자가 김복득씨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박화목 시인의 미망인 즉 박 목사 모친이 성함이었다.

 

▲ 박화목 시인

노래가 된 자신의 시를 시집에 싣지 않은 시인들

이후 나는 임긍수 작곡가에게 다시 전화를 하여, “혹시 당시 시험감독 때 갖고 들어간 것이 박화목 시인의 시집이 아니고 가곡악보집이 아니었는지” 물어보았다. 임 작곡가는 “오래되어서 정확한 기억이 없지만 그럴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마침내 궁금증이 풀리는 듯 하였다. 임긍수 작곡가는 당시 시집이 아니라 가곡악보집에서 박화목 작사 김로현 작곡의 <그래 창 밖에>를 보고 여기있는 가사에 자신의 새로운 곡을 붙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나의 시에 여러 작곡가가 각각 자신의 곡을 붙이는 것은 흔한 일이니까. 또한 멜로디를 새로 붙이면서 가사도 조금 바꾼 것 같다.

그런데 왜 박화목 시인은 <그대 창밖에서>를 자신의 시집에 싣지 않았을까? 시인이 노래로 된 자신의 시를 시집에 싣지 않는 경우가 아주 드문 일은 아니다. 가곡으로 유명한 박목월 시인의 <이별의 노래>가 그의 시집에 없고, 역시 유명 가곡인 양중해 시 <떠나가는 배>가 작사자인 양 시인의 시집에 없다.

요즘 분위기로 봐선, 자신의 시가 노래로 만들어지면 시집을 만들 때 그 시를 더 부각시키려고 할 것 같은데 수십년전의 시인들은 요즘 사람들과는 생각이 달랐던 것 같다. 노랫말이 되었으니 시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시집에 안 넣었을까? 아니면 노래가 된 자신의 시를 시집에 싣는 것을 겸연쩍게 생각해서였을까? 아무튼 그러한 이유들로 인해 <그대 창밖에서>도 박화목 시인의 시집에 안 들어있는 것 아닐까?

 

노(老) 시인의 <잠 못 이룬 밤>

세월이 달라졌고 또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자신의 시가 노래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당사자 시인에게는 밤잠을 설칠 정도로 기쁘고 흥분되는 일인가 보다.

 

팔순을 훌쩍 넘긴 노(老) 시인 교산 오두영 선생은 늦게 시작(詩作)을 배워 시인이 된 분이다. 근년에 들어와 여러 작곡가들이 그의 시를 가지고 노래를 만들었다. 주로 가곡이다. 임긍수 작곡가도 그중 한 분이다. 임 작곡가는 오 시인의 시 <겨울바다> 등 세곡을 노래로 만들었고, 정애련 작곡가도 그의 시 <벚꽃 핀 날에> 등으로 세편의 노래를 지었다.

오두영 시인은 2013년 6월 8일 지인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 임긍수 작곡가로부터 자신의 시 <어느 누가 부르는 노래인가>의 작곡이 완료되었다는 스마트폰 문자를 받았다. 그날 밤 그는 너무 기쁘고 흥분되어 잠을 못 이뤘다. 다음날 새벽 오 시인은 <잠 못 이룬 밤>이란 제목의 글을 ‘임긍수 카페’(Daum)에 올렸다. 작은 활자로 A4 용지 한 장을 꽉 채울 정도의 짧지 않은 글이지만 그 가운데 다음과 같은 몇 줄을 소개한다.

 

“너무 즐겁고 기쁜 날에는 잠이 안 온다. --- 밤 12시 자정이 넘어서 자리에 누었으나 잠이 안온다. 기쁨이 넘쳐 흥분되어 잠을 못 이룬 것이다. --- 나이 팔십에 지난 날을 돌아보니 세월은 살과 같이 빠르고---, 내 마지막 생에 시를 쓰게 되고 몇몇 분이 명곡으로 내 시에 날개를 달아주셨으니 어찌 은혜를 많이 입은 내 삶에 감사하지 않으리오.“

 

6월 9일 새벽 3시 35분에 썼다고 적혀있다. 카페에 올린 시각은 새벽 4시 10분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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