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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승절 열병식의 막을 연 정율성의 <인민해방군행진곡>:세종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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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승절 열병식의 막을 연 정율성의 <인민해방군행진곡>

이호 기자 | 기사입력 2015/09/04 [10:48]

중국 전승절 열병식의 막을 연 정율성의 <인민해방군행진곡>

이호 기자 | 입력 : 2015/09/04 [10:48]
▲ 정율성기념관 내부

9월 3일 중국 북경 천안문광장에서 펼쳐진 중국 항일 승전 70주년 열병식에서 행진곡으로 처음 연주된 곡은 예상했던 대로 한국인 정율성 선생이 작곡한 <인민해방군가>였다.

<인민해방군행진곡>으로도 불리는 <인민해방군가>는 1939년 정율성 선생이 연안의 중국 항일군정대학 교수로 있더 시절 항일동지이자 시인인 공목(公木)의 노랫말에 자신이 가사를 조금 덧붙여 작곡한 것이다.

륵룡강성 하얼빈의 '정율성기념관'에는 정율성 선생의 작품을 연대별로 기록해 놓았는데, 1939년에 작곡한 대표적인 곡으로 <팔로군 대합창> <중국인민해방군행진곡> 두가지를 올려놓았다.(사진)

한국의 전남 광주 출신인 정율성 선생은 중국에서 항일 투쟁을 하던 형들을 만나러 19세때인 1933년 중국으로 건너가 음악에 특별한 재능을 발휘하여 중국인의 아리랑으로도 불리는 <연안송> <인민해방군가>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중국인민해방군행진곡>은 1988년 덩샤오핑 당시 군사위원회 주석에 의해 '인민해방군 공식 의전곡'으로 지정되었다. 이번 전승절 열병식에서도 당연히 가장 먼저 연주될 것으로 예상되었었다.

이날 이 곡은 천안문 위에서 연설을 마친 시진핑 주석이 사열을 시작할 때 합창단 1200명을 포함한 군악대 2400명에 의해 연주되었다.

정율성 선생은 '중국의 3대 혁명음악가'이자 '신중국 100대 영웅'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한국에서는 그가 해방후 북한으로 들어가 활동했고, 6.25 전쟁시 중국인민해방군 창작팀의 일원으로 참전까지 한 사실 때문에 별로 거론되지 않다가 10년 전인 2005년부터 그의 고향인 전남 광주에서 '정율성 국제음악제'가 열리면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전남 화순군에서는 2008년 그의 동상을 세우기도 했다.

한국에서의 이름은 부은(富恩)이지만 중국에 건너간후 '선율로 성공하겠다'는 다짐으로 율성(律成)으로 개명했다.

1976년 사망 후 중국의 혁명열사릉인 바바오산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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