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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커피 문화의 발자취 - 6:세종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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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커피 문화의 발자취 - 6

6.초창기의 커피 매너와 관습

최우진 기자 | 기사입력 2013/11/15 [16:16]

연재!! 커피 문화의 발자취 - 6

6.초창기의 커피 매너와 관습

최우진 기자 | 입력 : 2013/11/15 [16:16]


 

 
하노버의 여행가인 칼스텐스 이부르(Karstens Iebuhr : 1733~1815)는 기록에서 아라비아, 시리아, 이집트 등의 커피 하우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곳은 보통 큰 홀이다. 바닥에는 매트가 깔려 있고 밤에는 여러 개의 램프가 불을 밝히고 있다. 또 그곳은 세속적인 공연을 펼치는 공연장이었으며 가난한 학자들이 참여하여 토론하고 페르시안 영웅 루스탄 살(Rustan Sal)의 모험담을 읽거나, 우화나 이야깃거리를 지어 내고, 웅변가가 사람들 앞에 열변을 토하기도 하는 그런 장소였다.

  다마스쿠스에 있는 한 커피 하우스는 변사를 고용하여 그날의 청중 기호에 맞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 주곤 하였다.

  알레포(Aleppo)에는 특별한 영혼을 가진 선각자가 있어 그곳의 모든 커피 하우스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세계에 대한 설법을 했다고도 한다. 어떤 커피 하우스는 가수와 댄서가 있어 노래와 춤으로 손님을 즐겁게 해주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아라비안 나이트의 천일 야화를 듣기 위해 모여들기도 했다.

  프랑스의 동양학자(Orentalist) 갈랑 앙투완느(Galland Antoine : 1646~1715)는 콘스탄티노플을 방문했을 때 커피는 부자와 가난한 자, 터키인, 유태인,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을 가리지 않고 누구든 마시는 음료였다고 전한다. 어느 집이든 손님이 방문하면 커피를 주는 것이 이미 생활화되어 있었다. 커피를 거절하는 것은 문화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여겨졌으며 하루에 12잔은 보통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당시 콘스탄티노플의 가정은 커피 구입에 상당한 돈을 지출하여 프랑스 가정이 와인을 구입하는 데 소모하는 비용과 그 규모가 같았을 정도라고 한다.
  콘스탄티노플에서는 거지가 돈을 구걸할 때 커피를 사마실 수 있는 돈을 달라고 구걸하는 것이 마치 유럽의 거지가 와인이나 맥주를 사기 위해 구걸하는 것과 같다고 비교하였다.


  그 시절 터키 사람들은 부인에게 커피를 사주는 것을 거부하거나 가정에 커피를 조달하지 못하면 이혼 사유가 될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보통 남자들은 결혼할 때 여자에게 커피가 떨어지지 않도록 조달할 것을 약속하였다고 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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