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시조 <소식>을 <강 건너 봄이 오듯>으로 바꿔
송길자 시인은 당시 KBS에 보낸 가사의 원본을 갖고 있지 않아서 정확하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소식>을 대충 다음과 같은 내용의 노랫말로 만들어 보낸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이때 제목도 <강 건너 봄이 오듯>으로 바꿔달았다. 창 앞에 언 강물은 언제나 풀릴거나 KBS는 해방 이후 오랜 세월 시인들로부터 노랫말이 될 만한 시를 받아 이를 작곡가들에게 가곡으로 만들어 달라고 의뢰하는 일을 꾸준히 해왔다. 가곡 프로그램에 쓰기 위한 것으로서 우리 가곡 보급을 위한 작업의 하나였다. 송길자 시인은 1980년대 KBS에서 ‘내고장 노래만들기운동’을 펼칠 때 고향인 <여주의 노래>를 작사한 경험이 있어 노랫말 만들기가 생소한 작업은 아니었다. 그렇게 만들어져 KBS로 보내진 가사는 임긍수 작곡가(1949~ )에게 의뢰가 갔다. 한편 임긍수 작곡가는 가사를 받고 ‘여기에 어떻게 아름다운 멜로디를 붙일 것인가?’하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임긍수 작곡가는 마침내 작곡에 따른 가사 정리 문제들을 상의하기 위해 시인과 만났다. “임긍수 선생님이 ‘노래에 후렴이 들어갔으면 좋겠다’며 ‘어느 부분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으셨지요. 그래서 후렴 부분 가사는 윗 글에서 따든 아랫 글 가사 중에서 따든 편의대로 하셔도 좋겠다 하여 그것은 그 분께 맡겼었지요. 그래서 지금의 노래처럼 1,2절로 나뉘고 그 사이에 후렴이 들어가게 되었답니다.” 임긍수 작곡가의 말도 들어보았다. “아름답고 서정적인 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떨 때는 가사중의 일부 단어들을 순화시켜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노래의 틀에 맞추기 위해서 원래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범위내에서 정리해야 할 것이 많은 때도 있지요.” 그대 창밖에서 임긍수 작곡가는 <강 건너 봄이 오듯>을 이야기할 때마다 이 노래가 나오게 된 뿌리는 데뷔작인 <그대 창밖에서>라고 말한다. 그는 <그대 창밖에서>가 오늘날 ‘작곡가 임긍수’를 있게 한 소위 ‘출세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대 창밖에서>가 인정을 받으면서 방송사에서도 작곡 의뢰가 오기 시작했고 그러던 중 탄생한 곡이 <강 건너 봄이 오듯>이므로 <그대 창밖에서>가 없었다면 <강 건너 봄이 오듯>도 없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대 창밖에서 박화목 작시 / 임긍수 작곡 그대 그리워 노래하네 충남 천안 출생인 임긍수 작곡가는 병천 초중고교를 거쳐 1969년 서울음대 작곡과에 진학했다. 그가 초중고교를 다닌 천안 인근 병천은 1919년 유관순 열사가 3.1만세운동을 벌인 아우내 장터가 있는 곳이다. 그는 재학중 군생활을 마치고 졸업 이듬해인 1977년부터 1994년까지 은광여고에서 음악교사로 재직했다. <저작권자 ⓒ 세종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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