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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에 친절을 가르친 MK택시王 끝내 지다"

일본 택시업계의 풍운아 MK창업자 재일교포 유봉식씨 향년 88세로 별세

이승찬 기자 | 기사입력 2017/06/13 [11:36]

"日本에 친절을 가르친 MK택시王 끝내 지다"

일본 택시업계의 풍운아 MK창업자 재일교포 유봉식씨 향년 88세로 별세

이승찬 기자 | 입력 : 2017/06/13 [11:36]
일본 택시 업계의 신화 MK 택시의 모체 교토 홈페이지

“신용과 친절의 대명사인 일본인들 조차도 그에게 친절을 배웠다.”

 일본 ‘택시업계의 풍운아’ MK택시창업자인 재일교포 유봉식(일본명 아오키 사다오) 씨가 8일 오전 4시 35분 지병인 폐렴으로 교토시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고 12일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향년 88세.

 MK택시 신화의 주인공이 끝내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것이다.

.경남 남해출신인 유씨는 1943년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 리쓰메이칸대학 법학부를 중퇴한 뒤, 1957년 나가이 석유를 인수해 주유소사업을 하다가 교토에서 택시회사인 미나미택시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택시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가쓰라 택시를 인수한 유씨는 1977년 두 회사를 합병해 'MK'를 설립하고 회장에 취임했다.

생전의 유봉식 회장

 MK택시는 시작부터 파격적인 시도를 했다. 유씨는 "요금 인하가 매출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동일 지역, 동일 운임“이라는 요금 규제에 반대했다.

 특히 요금인하를 둘러싼 행정 소송에서 승소해 전국에서 처음으로 10% 요금인하를 관철시키고 저가 택시 길을 열어 규제 완화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들에게는 미운 털이 박히는 일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와 함께 MK택시는 ‘택시요금엔 친절과 서비스가 포함돼 있다’며 운전기사가 손님에게 인사를 하지 않으면 요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선언하는가 하면, 장애인 할인이나 대졸 운전자 채용 등의 독특한 경영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택시기사는 비행기 파일럿과 같다는 철학

 일본 홋카이도 지역에 MK택시가 진출할 때는 지역 택시기사들이 항의시위를 할 정도였다.

 그의 성공신화는 본인 스스로의 실천에 있었다. 기사들의 인사성을 위해 10년간 기사들에게 먼저 인사하고 새벽에 출근해 일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기사들에게 커피를 타주는 친밀한 스킨십을 보여줬다.

 

고된 택시기사들에게  직업 프라이드를 심어주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비행기 파일럿과 비교하며 연봉과 대우를 높여주기 위해 수익을 극대화하고 남는 이익은 적정배분을 경영모토로 삼았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사택을 마련해 기사들에게 주거 환경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심지어 자사 택시기사들을 교토의 영국문화원에서 영어공부를 시켜 영어택시기사 자격증을 따게하고 관광객들에게 영어서비스와 관광서비스를 제공해 외국인 손님들을 단골로 만들고 팁도 챙기게 하는 노력도 기울였다.

 또 MK택시 기사들의 제복을 유명 디자이너에게 디자인과 제작을 맡겨 70만원짜리 유니폼을 제공했다.

대표적인 친절 사례중의 하나는 늦은 밤 여성 고객이 하차하면 걸어가는 골목길을 전조등으로 비춰주거나 소나기가 쏟아지면 공짜로 우산이 없는 승객에게는 우산을 제공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저 000가 어디까지 모시겠습니다. 000로 가시는 것이 맞지요? 감사합니다. 잊으신 물건은 없으십니까” 라는 네 가지 인사 중 하나만 빠트려도 그 기사는 현업에서 제외하고 스파르타식 교육을 시켜 친절이 몸에 붙도록 노력했다.

 MK택시의 친절이 소문나면서 재일교포에 배타적인 일본인들조차 더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값도 싼 MK택시를 이용하기 위해 사전 예약은 필수였다고 한다.

뉴욕타임즈, 세계 최고의 서비스 기업으로 선정

 이같은 노력으로 일본에서 가장 서비스가 좋은 회사에 헌정되는 엘레강스 컴패니에 소니, 토요타, 마쓰시다 등에 이어 9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미 뉴욕타임지는 1995년 MK택시를 ‘세계 최고의 서비스 기업’으로 선정하기도 했으며 우리나라에서 TV드라마로 방송되기도 했다.

유봉식 회장의 경영철학 다룬 책

 MK그룹 회장 퇴임 뒤 2003년부터는 긴키산업신용조합의 대표이사 회장을 역임했다.

 그러나 말년에 아들문제와 경영권 시비 등으로 자신이 몸담았던 긴키산업신용조합 회장직에서 쫒겨난 것은 흠으로 남는다. 교포사회 일각에서는 한국계 기업에 엄격해진 일본 금융당국과 사실상 후계자 였던 일본인 오모토 이사장이 암묵적 합의로 유회장을 쫒아낸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택시업계는 물론 일본 사회 전체에 ‘친절과 신용’이라는 두 단어를 각인시킨 한국인 유봉식 회장의 발자취는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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